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이사야 27장 [세계적고난이 대환란에 일어나며 세상에서 추방된 극소수 마지막 구원자들이 구원상실 직전에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새하늘, 새땅의 영생으로 구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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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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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7장
[세계적고난이 대환란에 일어나며
세상에서 추방된 극소수 마지막 구원자들이
구원상실 직전에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새하늘, 새땅의 영생으로 구원됩니다]
1절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그 날에’ 그 날은 재림의 날입니다. 여호와께서 ‘sore’ 자신의 쓰라린, 날카로운, 예리한, 그리고 크고 강한 칼로 ‘piercing serpent’ 꿰뚫는, 지독한 큰 뱀 리워야단을 ‘punish’ 벌하는 것입니다. 재림의 날은 마귀를 벌주는 날입니다.
그런데 왜 리워야단일까요? 리워야단은 마귀인데 인간들에게는 고통을 주며 고난을 주는 존재로 묘사되는 마귀입니다. 같은 마귀라 할지라도 ‘우리를 시험하는 쪽으로 오느냐? 고난으로 오느냐?’인데 나중에 재림 때는 온 지구가 엄청난 인류 전체의 고난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점점 대환란이 진행되면서 인류 모두가 다 가난과 질병과 재난과 공포에 다 빠져듭니다. 누가 하느냐? 리워야단입니다.
욥에게 역사했던 리워야단이 욥만이 아니라 이제 재림 때가 가까울수록 모든 인류들이 다 고난에 빠져드는데 그 리워야단 때문에 전부 다 엄청난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볼 때는 리워야단, 고난을 주는 마귀입니다. 어떤 자이냐? ‘even’ 바로 이렇게 번역되는데 ‘crooked’입니다. ‘꼬불꼬불한’은 오번역입니다. ‘굽은’입니다. ‘serpent’ 굽은 큰 뱀입니다.
무엇입니까? 이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재림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사람들은 온통 고난을 당해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왜? ‘crooked’라는 것은 ‘굽은’이기 때문에 펴지지 않는 것입니다.
‘crooked’라는 것은 ‘마음이 곧은’과 같은 묘사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이미 악에 젖었기 때문에 더 이상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인류의 고난이 와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굽은 마음입니다. ‘꼬불꼬불한’은 오번역입니다. 그 마귀가 인간들의 마음을 굽은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회개하지 않고 계속 악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리워야단을 벌할 것이고 그분이 ‘slain’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입니다. 무엇을 죽이느냐? 바다에 있는 용입니다. 그러면 이 바다가 여기에 있는 태평양일까요? 그렇지 않죠. 이 바다는 세상 바다, 세상 임금 용입니다.
용, 옛뱀이라고 하죠. 용이 나옵니다. 용은 마귀입니다. 마귀 가운데 마귀들과 악령의 우두머리, 이 용을 드디어 죽이는데 인간들이 볼 때는 리워야단입니다. 고난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누구냐? 그게 옛뱀, 용이라는 것입니다. 마귀입니다.
그래서 이제 마귀를 죽인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죽을 수 있나요? 안 죽습니다. 불의 호수로 던짐을 말합니다. 드디어 재림하신 다음에 마귀를 불의 호수로 던져버립니다. 죽입니다.
2절입니다.
그 날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
‘in that day’ 그날, 언제입니까? 재림의 날입니다. 그날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 ‘red wine’ 붉은 포도주의 포도원을 향해서 ‘sing’ 노래하라는 것입니다. 드디어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찬양이 넘쳐납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재림 천국에서 찬양이 넘쳐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구원받은 영혼들은 천국에서 그 승리와 그 은혜들을 찬양할 것입니다.
3절입니다.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구원받은 영혼들이 모인 재림 천국에서입니다.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드디어 재림 천국은, 이 포도원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습니다.
재림 천국은 이제 마귀의 공격을 받지 못합니다. 왜? 재림 천국은 완벽한, 그리고 영구적인 포도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4절입니다.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오번역입니다. ‘fury is not in me’ 분노가 내 안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지금 하나님께서 분노 가운데 있으시죠. 왜? 지금은 마귀도 있습니다. 불신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재림하시면 분노할 게 없습니다. 모든 불신자가 다 불의 연못으로 들어갔고 마귀도 불의 연못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분노할 게 없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에게 분노가 아예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분노가 있죠. 인간의 죄가 있으니까 분노가 있습니다. 그때는 분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 대한 찔레와 가시가 누가 내게 전투하겠느냐?’입니다. 그때는 찔레와 가시가 없습니다. 찔레와 가시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들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때는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 전투로 대항하겠느냐?’입니다.
당연히 대항을 아무도 안 합니다. 그때는 이런 전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드디어 재림 천국에는 싸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가서 그들 모두를 ‘burn’ 태울 거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불의 연못에 다 던졌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대적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와 화친할 것이니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힘을 의지하고’ 붙잡는 것입니다. 붙잡고 ‘그가 나와 평안, 화해했으리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 적들이 없죠. 내 편이 된 것밖에 없습니다. 적은 이미 다 꺾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게 화해된 자들만 구원받는데 ‘화해했느냐?’입니다. 이미 다 넣었기 때문에 없다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오번역입니다. 그분이 야곱으로 하여금 뿌리를 내리도록 그들을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뿌리를 내릴까요? 새 하늘과 새 땅에 새롭게 정착된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드디어 거기서 영적인 환희와 영광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결실로 온 지면, 세상의 지면을 채운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의 모든 영광이 가득 채워져서 믿었던 사람들이 거기서 영광 가운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7절입니다.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던들 그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 백성이 죽임을 당하였던들 백성을 죽인 자가 죽임을 당함과 같았겠느냐
‘그분이 자기를 쳤던 자들을 치셨던 것처럼 그들을 치시겠느냐?’입니다. 이것은 ‘불신자를 치셨던, 지옥으로 보내고 불의 연못으로 보내신 것을 우리에게 하겠느냐?’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진노하지 않으시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에 의해서 살해당한 그들의 살해처럼 그들을 죽이겠느냐?’입니다. 더 이상 죽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죽음이 없습니다. 거기서는 영원히 죽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분리가 없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
‘어떤 알맞은 상태에서 그것이 새싹이 돋아날 때’입니다. 새싹이 돋는다? 어떤 새싹일까요? 너는 동풍의 날에 그것과 투쟁할 거라는 것입니다. 동풍의 날이 무엇일까요? 재림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재림이 있을 때 바람이 네 바람이 붑니다.
네 바람은 실제 태풍이 아니라 죽음의 바람입니다. 네 바람이 불어서 재림 때 전 인류가 다 죽게 됩니다. 그러면 이 네 바람이 어떤 걸까요? 질병이든지 자연재해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재해일 확률이 큽니다.
이제 이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로 전 인류가 다 죽어갈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나만 살 수 있느냐?’입니다. 나만 살 수 있을까요? 지구 온도가 60도가 올라갑니다. 살 수 있을까요? 재림 직전입니다. 드디어 인류들은 죽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제 죽음이 앞당겨 있습니다.
네 바람은 죽음의 바람입니다. 재림할 때 전부다 ‘죽는구나’할 때 믿는 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물론 휴거 전입니다. 물론 우리는 휴거됩니다. 휴거되기 전, 주님의 재림 전입니다. 이때 전 인류가 네 바람 때문에 죽어가는데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그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기 써 있습니다.
그때 동풍의 날에 ‘stayeth his rough wind’ 그의 거친 바람을 머물게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대해서? 믿는 자입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믿는 자는 자연재해로 안 죽습니다. 사람들이 막 죽어 나갈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 때만 죽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죽어 나가는데 안 죽습니다.
왜? 바람을 머물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번역입니다. 그래서 ‘새싹이 돋을 때’입니다. 새싹이 돋을 때 너희는 그것과 투쟁할 거라는 것입니다. 새싹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재림하자마자 새 하늘과 새 땅이 오는데 그 무렵에 그때 전 인류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너희들은 그것과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지 않습니다.
휴거 전 모든 인류의 죽음 사이에 우리는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는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마 기적이겠죠. 물론 이것이 어떤 일일지는 상상이 안 갑니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놀라울 것입니다. 왜?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자연재해로 죽지 않고 어떤 놀라운 은혜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의 죄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을 부서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오번역입니다.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하죠. 주님의 재림을 통해서, 죄사함을 통해서 우리는 속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죄를 ‘take away’ 벗어버려서 모두 열매로써 남는 것입니다.
‘all the fruit’입니다. 아까 처음에 온 지면에 열매가 넘쳐나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열매가 무엇이냐?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가면 열매들만 남아서 있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take away sin’ 죄가 사함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매가 남는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제단의 돌들을 어떻게 하느냐? ‘chalkstones’ ‘횟돌’입니다. 횟돌은 석회암을 이루는 돌입니다. 석회돌입니다. 석회돌처럼 다 산산히 부숴버린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제단들입니다. 하나님이 왜 예배처를 부숴버리느냐? 주님이 재림하실 때 하나님이 제단에 대해서 열 받죠.
그러면 왜 사람들이 구원에서 이탈되고 소수가 되느냐? 그 다음 말씀입니다. ‘아세라와 우상이 거기 서지 못할 것이다’입니다. 아세라를 섬긴다는 것입니다. 대환란이 무엇이냐? 대환란은 모든 제단들이, 예배처가 아세라를 섬깁니다.
바알은 기복주의입니다. 아세라는 무엇일까요? 주님이 재림을 통해서 불신자들을 다 멸망시키시고 믿는 자만 구원하는데 극소수입니다. 왜 극소수이냐? 예배처가 다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세라는 음란입니다. 이제 모든 인류는 다 음란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다 음란에 빠집니다. 그래서 구원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바알, 기복신앙입니다. 아세라, 음란입니다. 쾌락주의입니다. 성입니다. 여기에 다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재림하시면서 부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서지 못하게 하리라’ 이것 때문에 돌아오려는 백성이 못 돌아왔으니까 열 받는 것입니다. 전부 다 아세라에 빠집니다. 그래서 지금은 홍수입니다. 인터넷 좋아하죠. 인터넷이 우리를 다 망치는 것입니다. 케이블TV 좋아하죠. TV가 다 망치는 것입니다.
제가 옛날에 출장을 가면 여관에 갑니다. 가면 그런 여관들은 이상하게 케이블TV를 연결해서 채널을 틀면 다 음란물들이 나옵니다. 출장 가면 그게 문제입니다. 출장 가면 낮에는 교육하고 하지만 저녁에 잘 때는 틀면 다 이상한 게 나옵니다.
그때는 일반 대중에는 안 퍼졌을 때입니다. 그런데 여관마다 전부 다 그렇게 틀어놓습니다. 그러니 음란이 안 들어올 수 있나요? 안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집집마다 다 있습니다. 지금은 아예 가지고 다닙니다.
그러니 앞으로 전 세계는 다 음란해지는 것입니다. 음란한 사람이 예배드리면 그것이 아세라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기복주의자가 예배드리면 기복주의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존재냐?’입니다. 거룩한 자가 예배드리면 예배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무엇이냐? 사람이 결정합니다. 기복주의자가 아무리 예배드려도 기복주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부다 아세라 상에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왜? 음란한 자가 모여있으니까 음란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수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대저 견고한 성읍은 적막하고 거처가 황무하며 버림 받아 광야와 같은즉 송아지가 거기에서 먹고 거기에 누우며 그 나무 가지를 먹어 없이하리라
‘대저 견고한 성읍은’ ‘defenced city’ 이것은 구원의 성입니다. 구원의 성이 ‘desolate’ 황폐하다는 것입니다. 황폐하다는 얘기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황폐하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마태복음 할 때 했죠. ‘멸망의 가증한 것’에서 멸망이 오번역입니다. ‘황폐한 가증한 것’입니다. 더 이상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만드는 황폐함, 그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이, 구원의 성이 드디어 황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주지가 버려지는 것입니다. 광야처럼 남는 것입니다. 드디어 지구상에 있는 구원을 일으키는 참된 예배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다 구원의 능력이 상실되는 것입니다. 예배가 있겠죠. 기독교가 있겠죠. 그런데 구원의 힘은 없는 것입니다. 버려진 것입니다.
거기 무엇이 있느냐? 송아지가 먹으면서, 그리고 누우면서 가지들을 다 따먹는 것입니다. 어디서? 구원의 성에서입니다. 송아지는 좋은 거잖아요? 송아지가 무엇일까요? 송아지가 따먹는 것입니다.
송아지는 임신이 안 됩니다. 아기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이 없음을 상징합니다. 더 이상 구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계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애가 애를 낳습니까? 못 낳죠. 그러니까 드디어 구원이 안 되는 기독교로 전락되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들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이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이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
가지가 마르면, 시들면 그들이 ‘broken off’ 잘리는 것입니다. 당연히 가지가 마르면 잘리죠. 왜 재림하시느냐? 더 이상 구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가지가 마른 것입니다. 더 이상 구원이 안 됩니다. 그 남아있던 소수조차도 그들도 이제 구원이탈이 일어납니다. 이따 나옵니다. 그러니까 안되니까 예상보다 빨리 오시는 것입니다.
왜 그 날을 알 수 없을까요? 구원상실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 10명에 2명밖에 안 갑니다. 8명은 교회를 못 다닙니다. 교회를 안 가고 천국 갈 수 있을까요? 못 갑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게임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가지가 말라서 꺾어질 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가 와서 그들을 불로 던지는 것입니다. 불은 지옥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만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더 이상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들을 조성한 분이 은혜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드디어 더 이상 하나님께서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믿음을 주지 않습니다. 그냥 놔둡니다. 그래서 점점 구원이 없어지는데 이제 더 이상 전파할 수 없는 막바지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오번역입니다. ‘the channel of the river’입니다. river는 유브라데 강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맨 끝 지점입니다. ‘거기서부터 애굽 시내까지’입니다. 이것은 기독교라는 세계입니다. 기독교 세계입니다.
애굽 시내부터 유브라데 강은 기독교인데 그 안에 유다가 있고 이스라엘이 있고 아람이 있고 하맛이 있고 소바가 있고 그 안에 다 있습니다. 기독교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하느냐? ‘beat off’ ‘떨어내다’입니다. ‘beat off’라는 단어는 이불이 있는데 떨어서 먼지를 낼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제 재림할 때 그 많은 기독교에서 떨어내는 것입니다. 무엇을 떨어내느냐? 참 믿는 자들을 떨어내는 것입니다. 떨어내서 어떻게 되느냐? ‘one by one’ 하나씩 모아질 거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없으면 전 세계 기독교에서 구원받은 자가 ‘one by one’ ‘하나씩’입니다.
나중에 마치 노아 때처럼 손으로 세게 됩니다. 손으로 셉니다. 그것이 바로 재림 때입니다. 재림 때 많이 들림받는다? 아닙니다. 별로 없습니다. 몇 명, 몇십 명, 몇백 명, 숫자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재림 때 구원받는 숫자를 셀 수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떨어내는 것입니다. ‘오 이스라엘의 너희 자녀들아’입니다.
13절입니다.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
‘그 날에’ 재림의 날입니다. ‘큰 나팔을’ ‘trumpet’입니다. ‘큰 나팔이 불려지리라’입니다. 무엇입니까? 재림의 나팔입니다. 마지막 나팔입니다. 나팔이 불려집니다. 누구에 의해서? 나팔을 누가 불까요? 천사가 나팔을 붑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되느냐? 앗시리아 땅에서 멸망되려는 그들이 올 거라는 것입니다. 그 떨어진 사람들이 누구냐? 믿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앗시리아, 구원상실 되려고 가는 직전입니다.
왜 오시느냐? 그 소수의 몇 명조차도 지금 구원이 잃어버려지는 것입니다. 비참한 것입니다. 그 극소수도 ‘were ready to perish’ 멸망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그나마 빨리 오시는 이유가 무엇이냐? 지구상에 의인이 한 명도 없을까봐 빨리 오셔서 그들을 건진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앗시리아입니다. 구원상실을 말하죠. 구원상실의 땅에서 멸망당하려는 그들이 올 거라는 것입니다. 어디로 오느냐? 주님께 오는 것입니다. 신앙을 다 팔아먹은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버림받지 않은 상태입니다. 마지막 신앙인들의 모습입니다.
마지막 인류 최후의 신앙인들, 그들의 신앙은 노아와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들도 아닙니다. 의인인데 롯과도 같은 것입니다. 롯과 같습니다. 믿음이 있긴 있는데 까딱하면 잃어버리는 그런 롯 같은 믿음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때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상실이냐, 아니냐’할 때 하나님께서 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켰을까요? 미워서? 아닙니다. 롯 한명을 구출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한 분입니다.
지금 롯과 부인과 두 딸이 믿음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그 아내가 믿음이 잃어버려진 것입니다. 좀 지나니까 두 딸도 믿음이 없어진 것입니다. ‘안되겠다’하고 하나님께서 드디어 롯을 구원하고자 그곳을 멸망시켜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소돔과 고모라, 롯의 스토리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왜 오시느냐? 그나마 있던 한 명, 롯처럼 그나마 있던 그 몇 명이 잃어버려지니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으시겠습니까? ‘급하다’하고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재림입니다. 그때는 선지자가 없습니다. 의인도 거의 의인 같지 않은 의인입니다. 시답지 않은 의인입니다. 그 의인만 조금 남을 뿐입니다.
이제 곧 앗시리아, 구원상실로 가는 입장에서 그때 드디어 구원받는 것입니다. 비참한 것입니다. 재림, 영광스럽다구요? 아닙니다. 사실 비참한 것입니다. 인구는 최근에 76억인데 나중에는 물론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줄겠지만 손에 꼽습니다. 그런데 더 불행한 얘기가 있습니다. 그다음 얘기입니다.
‘the outcasts in the land of Egypt’입니다. 애굽에서 추방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애굽은 불신 지역을 말하죠. 그때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들은 애굽, 세상에서 추방적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안 끼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아예 세상에서 진짜 믿는 자들을 추방시켜서 나와서 있었을 것입니다.
노아 시대 때 노아와 한 가족이 따로 살면서 배를 지었던 것처럼 나중에 재림 때 믿는 자가 흩어진 게 아니라 어쩌면 모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미우니까 추방시키죠. 세상에서 미움받습니다. 그래서 추방되는데 물론 따로 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세상과는 공존이 안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버림받는 것입니다. ‘outcasts’ 버림받은 자들입니다.
주님이 재림할 때 누가 진짜냐? 세상에서 버림받아야 진짜가 되는 것입니다. 아마 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버림받아서 있는 것입니다. 물론 소수겠죠. 그들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예루살렘, 거룩한 산’입니다. 이것은 낙원 또는 재림 천국을 의미합니다. 산, 드디어 거기서 진짜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멋지게 보이나요? 주님의 재림이 환상적으로 보이나요? 아닙니다. 굉장히 마음이 아픕니다. 주님의 재림은 영광의 날이지만 사실 너무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여기에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재림에 대한 스토리가 성경 전체가 다 똑같습니다. 재림은 심판의 날인데 사람들이 재림을 오해합니다. 재림은 정말로 우리에게 슬픈 날입니다.
왜? 대부분 지옥 판정받고 자연재해로 다 죽어 나가고 그리고 재림하는데 그때 어떤 영적인 상태이냐면 구원상실 직전의 상태입니다. 영적으로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런 때 드디어 주님께 구원받으니 얼마나 비참합니까?
소돔과 고모라의 스토리가 바로 심판의 모형이며 재림의 모형입니다. 노아의 모형은 대환란의 모형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림의 날에 다 지옥 가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재림의 날이 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재림을 이해할 때 막 환상적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그날은 리워야단, 고난이 끝나는 날이고 마귀가 던져지는 날이고 그날은 극소수의 우리 믿는 자가 추방당해서 버림받아서 사는 그런 때가 됩니다. 그리고 그나마 있던 믿음이 없어지는 그런 비참한 때가 재림입니다. 그래서 재림은 어떻게 보면 사실 마음이 아픕니다.
왜? 우리가 믿음이 좋아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믿음이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실까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12시부터 가려졌죠. 세상 또한 어두워졌죠. 이것이 대환란을 또 상징합니다. 빛이 임했다가 상실되어서 이제 그다음에 부활하시죠.
마찬가지로 신앙계도 복음전파 기간이 2000년이 있었지만 나중에 대환란이 있는데 대환란의 마지막도 이렇게 안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뜨거워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더 뜨거워야만 그 남은 자들이 믿음을 가지고 살 텐데 안타까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 때 있을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이 정말로 믿음을 더 오래 가지면 재림도 지연되겠죠.
재림은 원리가 믿음이 없어지니까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을 더 가져서 좀 오래 하면 좋을까 했는데 항상 성경에서는 재림날이 생각보다 단축된다고 나옵니다. 왜? 한 명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단축되는데 생각보다 빨리 영혼들이 붕괴되는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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