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이사야 28장 [유대교가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실패하였지만, 예수님께서 천국의 기초돌이 되셔서 다양한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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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박경호번역성경  상세정보 보기 &  책 구입하러가기(URL 클릭!) www.4gospelchurchbooks.com   이사야 28 장 [유대교가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실패하였지만, 예수님께서 천국의 기초돌이 되셔서 다양한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 주십니다] 1 절입니다 .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 사실 이 선지서는 우리말로 볼 수가 없습니다 . 왜냐하면 이게 너무 오번역이 많기 때문입니다 . ‘woe’ ‘ 화로다 ’ 입니다 . 그러니까 지옥이죠 . 누구냐면 ‘the crown of pride’ ‘ 교만의 면류관에게 ’ 입니다 . 누구냐 ?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입니다 .   에브라임은 산당이 많은 곳이죠 . 유대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 성전에서만 구원이 존재하지 산당은 사실 구원이 희박한 곳입니다 . 그러니까 산당도 예배처지만 산당 예배는 법궤가 없기 때문에 , 그러니까 구원이 어렵기 때문에 항상 구원은 예루살렘과 유다 쪽으로 나온 것입니다 .   에브라임은 예배를 드리지만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그런 것입니다 . 현재 있는 북이스라엘입니다 . 그래서 이것은 지금 잘못된 예배를 드리는 어떤 사람을 알 수도 있습니다 .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 ‘glorious beauty’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이 ‘fading flower’ 사라지는 , 지는 꽃입니다 .   그들이 영광이 있습니다 . 그 속에도 영광이 있습니다 . 그런데 지는 꽃입니다 . 원래 꽃이 지면 안 됩니다 . 꽃이 지면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 이것은 일시적으로 은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이것이 중요합니다 .   우리가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세계에서도 꽃이 있습니다 . 그런데 지는 꽃입니다 . 나중에 구원이 안 됩니다 . 그래서 일

4GospelChurch 박경호 목사 이사야 5장 ['화있다'는 지옥이며, 화있는 이유가 지옥 곧 다양한 구원상실의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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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

['화있다'는 지옥이며,

화있는 이유가 지옥 곧 다양한

구원상실의 이유가 됩니다]



1절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오번역입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에 관한 노래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노래할 것이다입니다. 노래는 예수님이 하신 내용이 반복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역사들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자가 아주 비옥한 야산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다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이며 포도원은 예수님이 일구시는 땅, 즉 구원을 얻도록 예정된 밭입니다. 그곳은 예수님이 일하시는 곳이며 그곳에서 나오는 소출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땅을 파서오번역입니다. he fenced it입니다. 그분 곧 예수님이 울타리를 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포도원의 울타리, 구원 안과 구원 밖이 명백한 것으로 울타리를 치신 것입니다. ‘gathered out the stones’ ‘돌을 골라내다입니다. 열매를 잘 맺기 위하여 나쁜 것들을 포도원에서 골라내시는 것입니다. ‘choicest vine’ 최고로 좋은 포도나무로 그곳을 심은 것입니다. 야산에 울타리를 치신 다음에 포도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a winepress’ 포도주 틀입니다. 포도나무를 심는 이유는 포도를 통해서 포도주를 얻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 포도주 틀을 만드신 것입니다. ‘looked that it should bring forth grapes’ 포도가 산출되기를 바랐으나 ‘wild grapes’ 들 포도가 맺어졌다는 것입니다. 포도가 맺어져야만 포도원을 일구시는 예수님에 의해서 구원이 일어나는데 구원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이것은 포도원에 심겨진 구원을 받은 영혼들입니다.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예수님의 노래입니다. ‘구원받은 너희들아! 나와 포도원 사이를 한번 판단해보아라!’라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원어로는 내가 그것을 위해서 행한 것 외에 나의 포도원에 무엇을 더 많이 행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포도를 맺기를 원했으나 들포도를 맺지 않았느냐?’입니다.


5절입니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now go to’ 이제 끝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포도원에 무엇을 행할지를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나는 포도원의 울타리를 제거할 것이며 그것이 먹힘을 당하게 할 것이다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만들었는데 구원이 상실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구원의 열매가 맺어져야만 완성됩니다. ‘난 구원받았으니까 끝났어라고 하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의 열매가 맺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지불할 값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이며 주님과의 죽음입니다. 주님과 함께 죽지 않으면 결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아도 지옥에 떨어질까요? 구원을 받은 다음에 구원을 영구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영구적이지 않으며 가변적입니다. 언제든지 내게서 구원이 이탈될 수 있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면 또 이탈되는 것입니다.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드디어 구원을 다시 얻지 못하는 구원상실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오번역입니다. ‘lay it waste’ ‘초토화시키다입니다. 구원으로 인도한 장소와 그 사람들을 초토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쪽이 아니라 거꾸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쪽으로 역행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의롭고 신실했던 사람이 타락해서 더럽고 악한 삶을 삽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와 회개의 은혜가 없는 쪽으로 몰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초토화시킨다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오번역입니다. ‘hosts’ 모든 천사들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the house’ 이스라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집이라는 단어와 족속이라는 단어는 비슷한 단어입니다. 이것은 그 집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또한 유다 백성은 그의 기뻐하는 즐겁고 유쾌한 식물, 나무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의를 바라셨지만 도리어 ‘oppression’ 학대와 ‘cry’ 고통과 통곡, 울부짖음만 있고 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Woe unto them’ ‘! 그들에게 화있다입니다. 화는 지옥입니다. 선지서는 근본적으로 이러이러한 자들이 왜 지옥가느냐?’에 대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선지서에는 화있다가 많이 나옵니다. 전부 다 지옥입니다. ‘화있다는 그냥 벌받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대한 평가입니다. ‘join house to house’ 집과 집을 연합시키는 자들에게 화있다는 것입니다. 집이 무엇일까요? 아까 나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집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기독교와 신앙이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원래 천국 가는 집이였는데 그 집에 유사기독교라는 또 다른 집이 있는 것입니다. 이삭의 집이 있는데 이스마엘의 집이 또 있습니다. 야곱의 집이 있는데 에서의 집이 또 있습니다. 집과 집을 같이 묶어버린 것입니다.

기독교의 멸망은 내부적이지 않습니다. 왜 참기독교가 구원을 잃어버릴까요? 타종교를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섭냐면 우리의 모든 타락이 여기에 근거합니다. 참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전통이 아닌 다른 전통을 끌어들여서 망하는 것입니다. 부흥은 일어나지만 그것은 숫자의 부흥입니다. 그것이 망하는 길입니다. 성경에 없는 것과 예수님께서 하시지 않은 것은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것과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그대로 하는 것이 참기독교입니다. 제자란 무엇일까요? 복음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복음전파의 양식까지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참기독교에 다른 것이 들어오면 절대 안 됩니다. 참기독교가 망하는 이유는 구원을 얻어도 타종교나 유사기독교를 끌어들여서 희석되기 때문입니다.

‘lay field to field’ ‘밭을 엎어놓다입니다. 밭이 있는데 밭을 또 엎습니다. 참기독교에 유사기독교를 엎어서 같이 뭉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신앙의 붕괴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 곧 말씀 위에서만 신앙의 터를 닦아야 하며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거나 흡수하면 안 됩니다. 다른 것을 받아들이거나 흡수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있는지, 성경적인지 봐야하며 성경적이지 않으면 배척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은 넓어집니다. 지옥 가는 길은 대부분 넓기 때문입니다.

 

9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Of a truth’ 진실을 말한 것입니다. ‘many houses’ 많은 집들이 기독교의 모든 종파들이 뭉치면서 황폐하게 되는 것입니다. 국가마다 그리스 정교, 러시아 정교 등을 만들어서 합칩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와 거리하거나 융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리가 복음전파를 위해 애쓰지만 복음전파를 하기 위해서 융합되다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접촉해서 융합되기 때문입니다. 참교회가 위에 있어야하고 다른 것이 융합되어서 들어와야 하는 것이지, 다같이 융합되면 안 됩니다.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집이 외적으로 크고 멋있다고 할지라도 ‘without inhabitant’ 거주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주자는 구원받은 자를 말합니다. 기독교는 커졌는데 구원받은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열흘 갈이 포도원에’ ‘ten acres’ 10에이커입니다. 1에이커는 소 두마리가 하루 동안 땅을 가는 면적입니다. 10에이커면 큰 땅인 것입니다.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바트는 갤런인데 1갤런이 3.7L입니다. 포도주를 3.7L밖에 못 만드는 것입니다. 그 넓은 땅에서 구원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엄청 커졌는데 구원받은 자가 없습니다.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한 호멜은 220L입니다.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한 에바는 22L입니다. 뿌려도 나는 것은 100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구원의 소출이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임재와 말씀을 통해서 계속 구원을 원하는데 안 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융합 때문입니다.

 

11절입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Woe’ ‘화있다입니다. 누가 지옥 갈까요? 독주입니다. 독주는 세상의 술입니다. 세상적인 술에 빠지면 천국이 어렵습니다. 우리의 정신세계는 성령님이 지배하는 정신세계가 있고 세상이 지배하는 정신세계가 있습니다. 이 지배가 성령적이여야 하는데 잘못하면 세상적으로 됩니다. 그러면 세상의 술에 취해서 세상적인 사고가 되기 때문에 믿음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녁까지 계속되며 포도주가 그들을 inflame 했다는 것입니다. inflame흥분시키다, 고취시키다, 확 젖어들다입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술에 젖어들어서 지옥 간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harp and the viol’ 하프와 바이올린과 ‘tabret’ 탬버린과 ‘pipe’ 피리와 포도주를 그들의 연회에 갖춘 것입니다. 여기서 연회는 예배입니다. 예배가 얼마나 화려한지 하프, 바이올린, 템버린, 피리와 포도주가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의 ‘work’ 일에 관심이 없고 그 손의 운행하심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세상에 들어와서 인간의 잔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찬양도 아름답고 설교도 멋있고 뭔가 있어 보이는데 예배에 하나님의 역사가 없습니다.

 

1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내 백성이 ‘captivity’ 마귀에게 포로로 가는데 그들이 knowledge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knowledge는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생각이 투영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들이 우리에게 들어오지 않으면 기독교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구원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술에 취하니까 하나님의 생각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야만 우리는 남을 가르치고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을 몰라서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알면 영이 망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honourable men’ 존귀한 자가 famished한다는 것입니다. famished허덕인다, 굶어죽는다, 굶는다입니다. 또한 그들의 군중, 다수가 목말라 비틀어진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생수가 없고 영적인 빵이 없으니까 다 말라비틀어집니다. 육은 화려한데 영은 고갈되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hell’ 지옥이 ‘enlarged’ 자신을 넓힌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아는 자가 없으니까 지옥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옥의 문이 입을 한도 없이 크게 벌리고 그들의 영광과 그들의 다수와 ‘pomp’ 그들의 웅장함, 화려한 의식들과 기뻐하는 그들이 'descend' 다 지옥으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스올은 오번역입니다. 이것은 지옥입니다. 드디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여느 사람은 구푸리고 존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mean man’ 일반 사람들이 ‘brought down’ 내려갈 것이며 능력 있는 사람도 ‘humbled’ 꺾일 것이며 ‘lofty’ 오만한 눈들도 꺾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옥으로 꺾이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 사람들과 영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들과 오만한 눈들이 천국 가는 길에서 천국으로 향하다가 지옥으로 꺾이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하여 높아지시는 것입니다. 의와 불의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기준이 없습니다. 심판으로 규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sanctified’ 신성히 여기실 거라는 것입니다.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

오번역입니다. ‘lambs’ 어린양들이 ‘after their manner’ 그들의 풍습, 관습을 따라 ‘feed’ 먹는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다 잃어버리는데 그나마 갓 구원받은 영혼들입니다. 이 영혼들도 구원을 잃어버린 그 풍습과 관습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fat ones’ 뚱뚱한, 잘 먹은 양들의 ‘waste places’ 황폐한 장소에서 ‘strangers eat’ 불신자의 먹이를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영의 양식이 아닌 불신자의 먹이를 먹는 것을 말합니다. 나중에 다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오번역입니다. ‘vanity’ 무의미의 끈으로 죄악을 당기는 자들입니다. 죄악을 따라 사는 사람은 화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무의미의 끈입니다. ‘cart rope’ 수레 밧줄로 죄를 당기는 자들입니다. 죄를 계속 짓는 것입니다. 무의미라는 줄에 매여서 죄악이 끌려가며 수레에 밧줄을 달아서 죄가 끌려가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화있다는 것입니다.


19절입니다.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자기의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침몰당하지 않아. 나는 예수님의 보혈로 사함받았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서 나는 구원받았어. 하나님은 자기 일을 속히 이루실 것이고 우리에게 보게 하실 거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의 꾀와 아이디어를 우리가 보게 될거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가까이와도 우리는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헛된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망하고 있는데 스스로가 모릅니다. 자신의 멸망을 모릅니다. 죄를 지으면서 회개하지 아니하고 일이 이루어질 거야라고 하는 자들은 화있다는 것입니다.

 

20절입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이제 선과 악조차 구별이 안 가는 것입니다. 선악 분별이 되지 않습니다. 죄를 지으면서 의롭다고 하며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 뜻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이 섞여버린 것입니다.

 

21절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prudent’ 스스로 신중하다 하는 자들은 화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자기 눈에는 자기가 지혜롭고 어떤 뜻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영적인 것을 이루면 우리는 그 이룬 것을 바라봅니다. 영적인 증진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면 0점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빛 앞에 나아가서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성장한 것을 보면 안 됩니다. 신앙에서 성장 기준은 구원이 아닙니다. 성장 진행이 중요한 것입니다. 거듭나도 죽으면 천국가고 구원받아도 잃어버리면 지옥 가는 것입니다. 신앙에서 이뤄놓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매일매일이 중요합니다. 잠깐의 신앙적인 증진 때문에 기뻐하면 큰일납니다. 영력은 얼마 안 갑니다.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22절입니다.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3절입니다.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보상과 자기 유익에 의해서 악인들과 상대하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나에게 유익을 줄까봐 악인들과 안 끊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렵습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악인들은 무조건 우리에게 피해를 줍니다. 에클레시아는 세상에서 건짐 받았다는 것입니다.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유익 때문에 계속 거래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입니다.

원래 제사장은 나가지 않고 여기서 살아야 합니다. 다른 곳을 못 가게 되어있습니다. 접촉하면 안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가 어둠과 접촉하는 것은 엄청 해롭습니다. 접촉의 이유는 이익 때문인데 이것이 우리를 망치는 것입니다.

 

24절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불이 그루터기를 삼키며 불꽃이 벼나 지푸라기 같은 것들을 다 태워버려서 그들의 뿌리가 썩음이 될 것이고 그들의 꽃들도 날아갈 거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법을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버리면 다 지옥 갑니다. 율법은 준수해야하는 법인데 이것을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25절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그들 위에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에 분토 같이 되었도다 그럴지라도 그의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

자기 백성에게입니다. 구원을 오해하는데 구원은 부른 자들 가운데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자녀입니다. 자녀일지라도 지옥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첫째 자녀는 천국 갔고 둘째 자녀는 지옥 갔다고 나옵니다. 둘 다 자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천국이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자녀 가운데 약속의 자녀, 상속의 자녀가 받는 것입니다. 이삭은 상속의 자녀이고 이스마엘은 종된 자녀입니다.

자녀가 두 가지인데 약속의 자녀, 천국 가는 자녀가 있고 종된 자녀, 지옥 가는 자녀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자녀이고 에서도 이삭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지옥 갔습니다. 천국은 약속의 자녀만 얻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약속의 자녀를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천국은 순종의 자녀만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율법을 버려서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에 분토 같이 되었도다시체는 영의 죽음입니다. 영이 죽어서 영적인 시체가 거리 가운데에 분토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그의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버린 다음에도 하나님의 분노가 있는 것입니다. 영이 죽어서 시체가 되었는데도 하나님의 분노가 꺼지지 않습니다. 그 영혼은 지옥의 아래에 들어갑니다. 구원을 얻었다가 잃어버린 사람들은 지옥의 맨 밑에 들어갑니다. 제일 위험한 게 믿다가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을 더 받는 것입니다.

 

26절입니다.

또 그가 기치를 세우시고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자기에게로 오게 하실 것이라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올 것이로되

그가 기를 세우고 멀리서부터 나라들에게 기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다 지옥 가니까 멀리서 이방인들을 부르는 것입니다. 처음엔 셈을 택했는데 셈의 마지막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드디어 야벳을 택했는데 그것이 유럽과 아시아입니다. 셈은 중동입니다. 노아 전에는 중동을 택했습니다. 다시 또 신약시대에는 야벳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땅 끝에서부터 자기에게로 오게 하실 것이라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올 것이로되신약시대에는 이방인들이 구원 속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27절입니다.

그 중에 곤핍하여 넘어지는 자도 없을 것이며 조는 자나 자는 자도 없을 것이며 그들의 허리띠는 풀리지 아니하며 그들의 들메끈은 끊어지지 아니하며

신기하게도 이방인들이 열심으로 하나님 앞을 따라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오는 것입니다.

 

28절입니다.

그들의 화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겨졌으며 그들의 말굽은 부싯돌 같고 병거 바퀴는 회오리바람 같을 것이며

그들의 화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겨졌으며영적으로 무장된 것입니다. ‘그들의 말굽은 부싯돌 같고 병거 바퀴는 회오리바람 같을 것이며이방인들의 신앙이 영적으로 거대해지는 것입니다.

 

29절입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 그들의 소리지름은 어린 사자들과 같을 것이라 그들이 부르짖으며 먹이를 움켜 가져가 버려도 건질 자가 없으리로다

이방인들의 신앙이 사자처럼 아주 용맹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 일을 행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떠나도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또 부릅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니면 안 되지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든지 지혜와 믿음을 주실 수 있습니다.

 

30절입니다.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려서 어두우리라

그 날에’ in that day입니다. 어떤 날일까요? 신약 시대의 날일 것입니다. ‘그들이그들은 멀리서 온 이방인들일 것입니다.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뒤에도 그들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구원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잃은 자들입니다. 새로 구원을 얻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roar’ ‘포요하다, 으르렁거리다, 어흥거리다입니다. ‘만약 ‘one’ 누가 땅, 곧 누가 이미 구원을 얻었다가 잃어버린 그 땅을 본다면 보라 어둠과 슬픔이로다구원을 잃어버린 그 땅은 빛이 어두워져서 어둠과 슬픔입니다. 그 땅을 봤는데 사자가 바라보고 있고 저 어둠의 땅이 있는데 빛이 있었지만 그 빛이 다 어두워집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in the heavens’ 하늘들입니다. 영계의 하늘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빛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세계에서 구원을 받으면 빛으로 보입니다. 영계에서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리면 빛이 없어지고 깜깜해집니다. 그래서 점점 빛들이 꺼져버립니다. 구원상실이 무엇일까요? ‘유리하는 별이라별인데 빛을 잃어버린 별입니다. 빛에서 끝나고 어두워진 것이 구원상실입니다. 이제 새로운 구원받은 자들이 구원을 잃어버린 자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지옥을 보는 것입니다.

선지서는 구원상실의 스토리입니다. 사람들이 선지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상실을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지옥가느냐?’입니다. 말씀에서는 열에 하나만 구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에 아홉은 다 구원상실 됩니다. 성경에 다 있는 내용들입니다.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구원의 유지가 거의 드뭅니다. 그래서 선지서를 통과하지 않으면 구원상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아무도 장담이 안 됩니다. 그래서 늘 긴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담이 안 되지만 매일 하나님 앞에 가슴을 치며 애통해야합니다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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