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이사야 28장 [유대교가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실패하였지만, 예수님께서 천국의 기초돌이 되셔서 다양한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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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박경호번역성경  상세정보 보기 &  책 구입하러가기(URL 클릭!) www.4gospelchurchbooks.com   이사야 28 장 [유대교가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실패하였지만, 예수님께서 천국의 기초돌이 되셔서 다양한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 주십니다] 1 절입니다 .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 사실 이 선지서는 우리말로 볼 수가 없습니다 . 왜냐하면 이게 너무 오번역이 많기 때문입니다 . ‘woe’ ‘ 화로다 ’ 입니다 . 그러니까 지옥이죠 . 누구냐면 ‘the crown of pride’ ‘ 교만의 면류관에게 ’ 입니다 . 누구냐 ?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입니다 .   에브라임은 산당이 많은 곳이죠 . 유대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 성전에서만 구원이 존재하지 산당은 사실 구원이 희박한 곳입니다 . 그러니까 산당도 예배처지만 산당 예배는 법궤가 없기 때문에 , 그러니까 구원이 어렵기 때문에 항상 구원은 예루살렘과 유다 쪽으로 나온 것입니다 .   에브라임은 예배를 드리지만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그런 것입니다 . 현재 있는 북이스라엘입니다 . 그래서 이것은 지금 잘못된 예배를 드리는 어떤 사람을 알 수도 있습니다 .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 ‘glorious beauty’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이 ‘fading flower’ 사라지는 , 지는 꽃입니다 .   그들이 영광이 있습니다 . 그 속에도 영광이 있습니다 . 그런데 지는 꽃입니다 . 원래 꽃이 지면 안 됩니다 . 꽃이 지면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 이것은 일시적으로 은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이것이 중요합니다 .   우리가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세계에서도 꽃이 있습니다 . 그런데 지는 꽃입니다 . 나중에 구원이 안 됩니다 . 그래서 일

4GospelChurch 박경호 목사 이사야 10장 [세상(앗수르)는 우상을 통하여 대부분의 믿는 자를 구원상실로 인도하거나 징계하는 몽둥이로 쓰임받다가 늦어도 재림의 날 지옥불로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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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0

[세상(앗수르)는 우상을 통하여

대부분의 믿는 자를 구원상실로

인도하거나 징계하는 몽둥이로

쓰임받다가 늦어도 재림의 날 

지옥불로 떨어집니다]



1절입니다.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오번역입니다. 불의한 판결문을 ‘decree’ 판결하는 자들은 ‘Woe’ 화 있다는 것입니다.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재판과 판결의 불법성입니다. 또한 ‘prescribed’ ‘처방하다, 지시하다, 이행하다입니다. 판결에 의해서 지시가 떨어집니다. ‘너는 어느 정도 감옥에 가라는 그런 지시를 가진 ‘grievousness’ 끔찍이 무거운 것입니다. 잘못된 판결로 말미암아 지시된 내용이 과중된, 굉장히 짓누르는 것을 ‘write’ 기록하는 것입니다. 판결의 이행 과정 가운데 집행할 때 기록하는 자들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사법부와 법무부의 타락입니다. 이런 불법을 이행하는 자들은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from judgment’ 재판상에서 재판할 때 판결하는 사람이 ‘the needy’ 궁핍한 자, 사실은 육적으로 가난한 자에게서 ‘To turn aside’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the poor of my people’ 내 백성 가운데 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take away’ 권리를 뺏는 것입니다. needy는 육적인 궁핍이며 poor은 영적인 가난함입니다. the poor은 믿는 사람들입니다. 외적으로 볼 때 별로 없는데 구원받은 자들, 이들에 대해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또한 ‘widows’ 과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구원받았는데 외적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their prey’ 그들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희생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fatherless’ 고아들에게서 ‘rob’ 빼앗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법 팀과 법무 팀에 의해서 거꾸로 믿는 자들이 고통을 당하는 시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 있다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벌하시는 날과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의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오번역입니다. ‘visitation’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님께서 내려오셨죠. 하나님께서 실제 판결을 위해서 직접 방문하실 때입니다. 그 때 또 멀리서부터 오는 황폐함이 있을 때입니다. 사법 팀과 법무 팀의 타락 가운데 하나님이 임하셔서 거기도 황폐하게 할 거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의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사법부와 재판부를 의미하는, 사실은 행정부이며 사실은 정부이며 사실은 세상입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 앞에 벗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내용입니다.

 

4절입니다.

포로 된 자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포로 된 자 아래에사실은 죄인들입니다. 죄인들 아래에 네가 ‘bow down’ 엎드릴 것이며 죽임 당한 자 아래에서 엎드릴 거라는 것입니다. 너도 그들과 같이 내 앞에 죄인이 되며 내 앞에 죽음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일까요? 세상이 심판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하나님의 분이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계속적으로 세상에 심판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앗수르 사람은앗수르는 세상의 대명사입니다. ‘화 있을진저오번역입니다. 그는 내 분노의 막대기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쓰셔서 믿는 자들에게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손의 ‘staff’ 몽둥이가 ‘indignation’ 내 의분이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고통을 주거나 잘못된 판결을 하게 하는 것에 대하여 세상을 몽둥이로 쓰시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내가 그를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령하여 나를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니와

‘hypocritical’ ‘위선적인입니다. 믿긴 믿는데 가짜로 믿는 자들을 세상, 국가, 앗수르를 통해서 가만히 안 두시는 것입니다. 또 내 분노에 대한 백성에 대하여 내가 그에게 ‘charge’ 책임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 가운데 천국에 못 가는 사람들을 세상 정부와 세상을 통해서 그들을 치게 하시며 다시 또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take the spoil’ 탈취물을 얻고 ‘take the prey’ 먹이를 먹고 거리의 진흙처럼 그들을 짓밟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가운데 고통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 가운데 ‘hypocritical’ 위선적인 자들에게 고통을 당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의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 다만 그의 마음은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는도다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meaneth’ 그런데 그는 별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것을 별 생각 없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 사실에 대해서 쓰임 받을 뿐입니다. ‘다만 그의 마음은 허다한 나라를 ‘not a few’ 적지 않은 ‘nations’ 국가들에 대해서 파괴시키고 ‘cut off’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그가 이르기를 내 고관들은 다 왕들이 아니냐

내 고관들은’ ‘princes’ 세상의 princes는 지옥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모든 불신자는 다 왕자입니다. 다 지옥가기 때문입니다. 왕자들이 ‘altogether’ 왕들과 같은데 여기서 왕은 지옥이 확정된 자입니다. 기독교와 다르게 세상은 왕자가 왕입니다. 지옥이 확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왕자와 왕의 개념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왕자가 되어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왕이 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왕은 확정입니다.

 

9절입니다.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갈그미스는 시리아에 들어오는 입구이며 갈로는 시리아 안에 있는 도시입니다. 시리아의 영적인 의미는 거듭나기 전의 성도입니다. 거듭나기 전에 교회를 다니는 것이 시리아입니다. 북이스라엘은 거듭난 후의 성도이며 유다는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갈로와 갈그미스가 무엇이냐? 그가 거듭나기 전의 성도이건 그냥 입구에 있는 사람이건 똑같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앗수르 때문에 실족되었기 때문입니다. 앗수르는 실족을 일으키는 구원상실의 존재입니다. 앗수르가 점령하니까 갈그미스나 갈로나 차이가 안 나는 것입니다. 어차피 지옥 가니까 똑같다는 것입니다.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하맛은 갈그미스와 다메섹의 중간쯤에 있습니다. 갈그미스, 아르밧, 하맛, 다메섹 순입니다. 그런데 같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지옥이라는 얘기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교회에 오지만 실족되었습니다. 그러면 다 앗수르와 같은 땅이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 거듭난 자입니다. 사마리아도 앗수르에게 먹혀서 구원을 잃게 됩니다. 거듭난 자가 실족되었기 때문에 똑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앗수르라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불신자나, 거듭나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나, 거듭난 자나 다 앗수르가 먹었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다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내 손이 이미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에 미쳤나니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들보다 뛰어났느니라

내 손이 이미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에 미쳤나니내 손이 우상의 왕국들을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왜 지옥 가느냐? 결국은 우상입니다. 세상은 우상의 나라입니다. 성경에서 우상숭배자란 불신자를 의미합니다. 우상숭배자라는 것이 부처에게 절하는 게 아닙니다. 영적으로 불신자는 다른 말로 우상숭배자입니다. ‘예루살렘과유대에도 우상이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신상들보다사마리아에도 우상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구원상실을 주느냐? 우상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앗수르의 전략입니다. 어떻게 실족되고 구원을 잃어버리느냐? 우상을 섬기게 합니다. 방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섬깁니다.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우상을 섬기게 합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만을 섬기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이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면서 내가 다른 걸 좋아하는 것 때문에 힘든 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상이 없어야 하는데 인간은 하나님보다 원하는 것이 다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은 권력과 돈과 건강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상인데 그것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가서 우상을 구하는 것입니다. 탐욕에서 발달된 모든 소원들은 사실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나에게 질투심을 느끼십니다. 그러면 그것은 불신자와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섬겨야하는데 하나님께 와서 질투를 유발하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무엇으로 무너뜨리느냐? 우상을 섬기게 해서 하나님이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질투하면 하나님이 멀어집니다. 앗수르가 가져온 무기는 우상입니다. 우상을 가져와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뛰어났느니라자기들은 더 뛰어난 우상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불신자의 우상숭배는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상숭배를 잘해도 불신자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우상숭배는 불신자가 최고로 잘합니다.

 

11절입니다.

내가 사마리아와 그의 우상들에게 행함 같이 예루살렘과 그의 우상들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하는도다

드디어 사마리아, 북이스라엘을 우상으로 무너뜨립니다. 구원받은 자들도, 예루살렘도 우상으로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이제 모든 구원상실을 준 다음에 맨 마지막에 세상을 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먼저 거듭남과 구원을 줍니다. 다시 앗수르를 통해서 우상을 섬기게 미혹시킵니다. 그 다음에 구원상실이 된 다음에 앗수르를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13절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처럼 위에 거주한 자들을 낮추었으며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앗수르는 세상인데 자기가 대단한 줄 압니다. 왜일까요? 자기가 믿는 세계를 핍박하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니까 대단한 줄 압니다.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원래 경계선이 있었는데 경계선이 없어졌습니다. 여기 유대, 이스라엘, 시리아, 앗수르가 있었는데 다 먹었기 때문에 경계선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분량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재물은 돈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영적인 내용물들입니다. 성경을 이해할 때 재물을 돈으로 이해하면 큰일 납니다. 재물은 영적인 재물들입니다. 그들이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 자본들입니다. 거듭남의 자본들이며 말씀의 깨달음입니다. 이것을 다 탈취한 것입니다. ‘또 용감한 자처럼 위에 거주한 자들을 낮추었으며거주한 자들을 ‘put down' 멸망시킨 것입니다.

 

14절입니다.

내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그런데 이것이 쉬웠다는 것입니다. 구원상실을 일으킨 세상이 볼 때 그냥 버려진 알을 주움 같고 보금자리를 얻는 것처럼 쉬웠다는 것입니다. 구원상실이 어렵다고요? 무지 쉬운 것입니다. 구원을 얻기는 어렵지만 상실은 쉽습니다. 돈을 벌 때 땀 흘리고 연구해서 모으는데 날리는 것은 하루입니다. 똑같습니다. 구원을 얻는 과정 가운데 기를 써서 얻었는데 한 번에 날립니다. 앗수르가 볼 때 쉽다는 것입니다.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새의 보금자리에 갔는데 어미가 없고 알만 놔두고 갔으면 당연히 거기 있는 알들과 보금자리를 갖는 것이 쉽다는 것입니다. 날갯짓도 없고 입 벌려 싸우지도 않으니까 쉽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상실이 쉬운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세상은 우리를 구원상실로 인도하는데 세상은 하나님께 쓰인 막대기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쓰시는 것입니다. 몽둥이입니다. 몽둥이로 믿는 자와 거짓으로 믿는 자를 치는 것입니다. 환란으로 치기도 하고 구원상실로 치는 것입니다. 세상도 쓰임 받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진 자를 파리하게 하시며 그의 영화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해서 지옥불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구원 안에 있지 않은 모든 자입니다. 세상이 거듭난 자도 데려가고 거듭나기 위해서 말씀을 듣는 자도 데려가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세상과 하나님의 왕국 딱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중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왕국, 가나안입니다. 광야도 세상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있는 것이지 크게는 세상에 속하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며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불꽃같은 지옥의 형벌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루 사이에’ one day입니다. 언제일까요? 재림의 날입니다. 심판은 one day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가 휴거되어있는 것입니다. 한 날에 세상이 심판당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증거된 신약시대에 복음전파가 일어나지만 막판에 대환란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다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들이 없습니다. 결국 막판에 불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며찔레와 가시는 세상에 맺는 열매를 말합니다. 나무들이 세상에 살면서 찔레와 가시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어마어마하고 울창한 숲이 다 불타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불타는 것입니다.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오번역입니다. ‘standard-bearer’ 주장자, 선구자, 앞서가는 자가 ‘fainteth’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세상이 대단한 것 같았는데 드디어 불타버리는 것으로 종말을 맺는 표현입니다.

 

19절입니다.

그의 숲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수할 수 있으리라

이것이 슬픈 내용입니다. 맨 마지막 날,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이 땅위에 몇 명이 남느냐? 아이가 셀 수 있는 숫자라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 때 8명이 구원받았습니다. 마지막 날도 노아 때와 같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전부 지옥 갑니다. 재림 전에 대환란 때문입니다. 막판에 몇 명이 남느냐? 마치 노아 때처럼 어린아이가 계수할 수 있을 정도의 숫자가 남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 100이 안 넘습니다. 다 구원상실 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다 끝난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근세기 20년 동안 세계의 기독교 인구가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지금도 계속 추락하고 있습니다. 표면상 기독교인만 하더라도 20년 만에 떨어진 숫자가 5억입니다. 남은 나무를 아이가 센다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노아 때를 보면 믿어집니다. 노아 때처럼 8명밖에 안 남는 것입니다.

 

20절입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remnant입니다. 성경에서 남은 자, remnant는 구원상실 되지 않고 남은 자를 의미합니다. 구원을 받은 자가 아니라 구원상실 되지 않고 남은 자, 영생 얻을 자가 remnant입니다.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오번역입니다. 자기를 친 자에 대해서 ‘stay upon’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당연히 남아 있지 않은데 진실 가운데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 여호와에게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남느냐? remnant가 무엇이냐? 하나님께 여전히 남아 있는 자입니다. 세상으로 말미암아 구원상실 되는데 구원상실을 당하지 않고 여전히 남은 자, 끝까지 붙어 있는 자의 개념입니다.

 

21절입니다.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남은 자’ remnant입니다. 남은 자만 돌아오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이미 다 세상에 갔기 때문에 끝난 것입니다.

 

22절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이스라엘 민족적으로 유대인들이 지금도 3억 정도가 있습니다. 당시에도 수백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는 것입니다. 구원상실을 안 당하는 자만 주께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decreed’ 선언된, 판결된 ‘consumption’ 파멸이 의와 함께 overflow입니다. 드디어 남은 자만 돌아오고 나머지는 전부다 예정된 파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23절입니다.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이미 작정된 파멸이 온 땅의 ‘midst’ 가운데, 중심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림을 통한 파멸인데 현재 자연계와 인간계가 완전히 파멸되는 것입니다. 재림 때 남은 자 외에는, 휴거된 자 외에는 전부 다 파멸되어서 이 땅은 ‘consumption’ 소모되는 것입니다. 우주도 사라지고 다 사라져버립니다. 남은 자 외에는 다 사라집니다.

 

24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앗수르가 애굽이 한 것처럼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남은 자에 대해서 마귀가 구원상실에 실패하면 이제는 그를 핍박한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상을 통해서 자기 나라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게 만듭니다. 그런데 안 돌아오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으면 두들겨 때리며 핍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핍박, 물질의 핍박, 환난의 핍박을 가해서 계속 자기의 분노를 터트리는 것입니다. 대환란 때 남은 자에 대해서 계속 때리는 것입니다. 이미 다 예언된 말씀들입니다. 거짓으로 믿는 사람들은 놔둡니다. 자기 사랑에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구원을 유지하고 있는 남은 사람들은 계속 때린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5절입니다.

내가 오래지 아니하여 네게는 분을 그치고 그들은 내 진노로 멸하리라 하시도다

내가 오래지 않아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것입니다. 언제일까요? 재림 때입니다. ‘세상이 너를 핍박하지? 참아. 내가 가만히 안 둘거야. 내 분노를 터트릴거야라는 것입니다.

 

26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채찍을 들어 그를 치시되 오렙 바위에서 미디안을 쳐죽이신 것 같이 하실 것이며 막대기를 드시되 바다를 향하여 애굽에서 하신 것 같이 하실 것이라

기드온이 미디안을 격파해서 요단강에서 못나오게 했는데도 미디안이 도망갑니다. 그 중에 두 명의 장수가 있는데 바로 오렙과 스엡입니다. 그들을 끌고 와서 오렙 바위에서 그를 죽여 버립니다. 승리이며 대승입니다. 미디안이 수십만이 있었는데 300명 군사로 다 물리칩니다. 그와 같이 비록 소수의 믿는 자라 할지라도 승리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서 세상을 완전히 박살내는 것을 말합니다. ‘바다를 향하여 애굽에서 하신 것 같이 하실 것이라애굽이 쫒아올 때 홍해가 덮쳐서 애굽에 있는 모든 병거들을 한 번에 수장시켜버립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환란 때 마치 오렙을 죽인 것처럼 막판에 그냥 한방에 끝내버리는 것입니다.

 

27절입니다.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휴거되면서 영계에 들어가서 낙원 천국에 이릅니다.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드디어 인생의 멍에가 벗겨집니다. 어떤 멍에일까요? 세상의 멍에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지우는 멍에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믿음을 방해하며 믿음을 갖는 것 때문에 핍박하는 그런 멍에들이 벗겨진 것입니다.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한 번에 재림을 통해서 멍에가 다 벗겨진 것입니다.

 

28절입니다.

그가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 그의 장비를 두고

이것이 누구일까요? 블레셋이 처음에 게바에 진을 쳐서 요나단이 게바를 칩니다. 흩어집니다. 그러니까 블레셋이 3만 병거와 함께 다시 믹마스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다시 또 이스라엘군이 게바에 진을 칩니다. 그런데 그 때 다 도망갑니다. 사울은 길갈로 도망하고 초토화되어버립니다. 블레셋 때문에 이스라엘이 완전히 패닉이 되어버립니다.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사울이 사무엘을 기다리다가 안 오니까 자기가 예배를 인도합니다. 그 때 사무엘이 와서 넌 끝났어. 네 왕위가 다윗에게 넘어갈거야라고 합니다. 구원상실입니다. 블레셋이 유대에 들어온 것은 하나의 그림입니다. 우리 마음에 마귀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불순종하는데 자기가 예배를 왜 인도합니까? 불순종입니다.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입니다. 자기는 왕이라서 예배인도를 했는데 사무엘에게 정죄당합니다. 자기 멋대로 예배를 드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사울이 구원상실된 것입니다. 이런 구원상실의 힘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습니다.

 

29절입니다.

산을 넘어 게바에서 유숙하매 라마는 떨고 사울의 기브아는 도망하도다

산을 넘어 게바에서 유숙하매 라마는 떨고라마는 신앙적 중심인 사무엘의 고향입니다. ‘사울의 기브아는 도망하도다사울도 블레셋이 들어올 때 기브아를 버리고 길갈로 도망갑니다. 구원상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적으로는 사무엘이 교만해서 잘못된 예배를 드리면서 오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인도해야 예배가 바로 되는데 사울이 인도하는 것입니다. 누가 교회의 중심에 서느냐? 지옥 가는 목사들이 범죄하면서 서는 것입니다. 당연히 구원상실입니다. 오늘날 문제가 무엇이냐? 성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목사가 문제입니다. 이제 이러한 사울의 구원상실과 이들의 모든 구원상실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30절입니다.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 라이사야 자세히 들을지어다 가련하다 너 아나돗이여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 라이사야 자세히 들을지어다사울이 자기 딸 미갈을 갈림으로 보냅니다. 사울은 자기만 지옥 간 것이 아니라 딸도 지옥 보냅니다. 다윗을 미워하니까 자기 딸을 갈림에 있는 라이사의 아들에게 보냅니다. 당연히 구원상실입니다. 사울이 딸도 지옥 보내는 것입니다. ‘가련하다 너 아나돗이여아나돗은 아비아달의 고향입니다. 아비아달은 다윗이 도망다닐 때 항상 옆에 있던 제사장입니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옥 갑니다. 아비아달의 아버지는 아히멜렉입니다. 아히멜렉의 아버지는 아히둡이며 그 아버지는 홉니와 비느하스이며 그 아버지가 엘리입니다. 엘리의 혈통에 있던 아비아달이 다윗을 잘 섬겼습니다. 그런데 막판에 아도니아가 반란을 일으킬 때 아도니아와 한 패가 되어버립니다. 그 때 솔로몬이 아비아달을 부른 다음에 당신은 이제 제사장직에서 파면되었다고 합니다. 지옥입니다.

다윗과 함께한 사람이며 충성한 사람이며 다윗이 고통당할 때 이것을 나눈 사람입니다. 그런데 막판에 아도니아를 따른 것입니다. 이것이 지옥 사유입니다. 왜일까요? 다윗만 참교회입니다. 다윗이 어려우니까, 아도니아가 더 크니까 큰 사람에게 붙는 것입니다. 아비아달은 지금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사울도 지옥 갔으며 엘리도 지옥 갔으며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지옥 갔으며 그의 손자 아히둡도 지옥갔으며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도 지옥 갔을 확률이 큽니다. 아비아달도 지옥 갔습니다. 그래서 열왕기상에 엘리에 대한 저주가 이루어졌다고 써있습니다. 마치 사울 때문에 다 지옥 간 것처럼 엘리 한명 때문에 그 자손들이 몽땅 지옥 간 것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입니다. 목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유일한 예배인도자인데 그들이 지옥 갔습니다. 예를 들어서 대한민국에 교회가 하나밖에 없는데 그 교회 목사가 지옥 간 것이랑 똑같은 것입니다.

천국이 얼마나 어렵느냐? 하나님이 분명히 세웠습니다. 그런데 지옥 갑니다. 왜 지옥 가느냐? 왜 막판에 다윗을 떠납니까? 다윗이 참교회입니다.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그를 폐위시키고 이제 그 밑에 혈통적으로 제사장이 안 나옵니다. 예언대로 엘리 대가 막혀버리는 것입니다. 끝난 것입니다. 이런 비극이 일어난 것입니다. 구원상실이 어렵다고요? 되게 쉬운 것입니다. 예배인도자라는 제사장 급인데, 그것도 다윗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람의 옆에 있으면서도 지옥 가는 것입니다. 그깟 짧은 생애 때문에 판단을 잘못한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따르느냐? 그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내가 누구를 섬기느냐에 있습니다. 아비아달이 그렇게 다윗이 고통당할 때 옆에서 늘 함께했는데 맨 마지막에 돌아서서 솔로몬에게 폐위당합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아비아달에게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고 합니다. 아나돗은 현재 베냐민 지파 안에 있는 도시입니다. 드디어 아비아달이 끝난 것입니다.

 

31절입니다.

맛메나는 피난하며 게빔 주민은 도망하도다

전부 다 지옥 얘기입니다. 베냐민 지파 내에 있는 사울이나 엘리 같은 사람들과 함께 동반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지옥 가는 사람 옆에 있으면 안 됩니다. 어느 경우든지 항상 천국 가는 사람 옆에 있어야 합니다.

 

32절입니다.

아직 이 날에 그가 놉에서 쉬고 딸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그 손을 흔들리로다

아직 이 날에 그가 놉에서 쉬고놉은 아히멜렉이 있던 곳입니다. 엘리가 죽고 실로에서 놉으로 옵니다. 다윗이 놉에 가서 골리앗의 칼을 받습니다. 아히멜렉이 머뭅니다. 여기서 그는 앗수르입니다. 구원상실 된 자입니다. 딸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그 손을 흔들리로다예루살렘마저도 구원을 잃게 하기 위해서 손을 흔드는 것입니다. ‘앞으로 너야라는 것입니다. ‘내가 실로를 무너뜨렸어. 놉도 무너뜨릴거야. 이제 내가 와 있는데 앞으로 예루살렘도 무너뜨릴거야라고 하며 구원상실의 영이, 앗수르가 가장 깊은 신앙의 앞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33절입니다.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그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오번역입니다.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with terror’ 공포로 ‘lop the bough’ 가지를 자른다는 것입니다. 어떤 가지일까요? 이것은 세상입니다. 드디어 세상을 잘라버립니다. 그리고 그 높은 ‘stature’ 키를 벨 것이고 (거만한 자를 낮춘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세상은 심판당합니다.

 

34절입니다.

쇠로 그 빽빽한 숲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베임을 당하리라

그는 쇠로 그 숲의 빽빽함을 다 잘라버린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재림을 통해서 세상 자체를 다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베임을 당하리라레바논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많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심판 당할 자가 많음을 의미합니다. 왜일까요? 세상이 꽉 차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꽉 차 있기 때문에 세상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맨 마지막에 음부에서 올라온 짐승이, 핍박의 세력이 복음전파시대 때 칼 맞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그가 온갖 표적과 기적으로 유혹해서 다시 지옥을 늘이러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덟 번째 짐승입니다. 대환란입니다. 그 때 빽빽한 많은 나무들이 전부 다 불타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 지구와 태양계와 은하계와 우주가 다 불로 멸망당합니다. 아무것도 안 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구원상실 당하지 않고 남게 되는데 손으로 세는 정도의 극소수입니다.

노아 때 노아만 구원받았냐고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꽤 많은데 베드로후서에 노아와 일곱 식구만 구원받은 자였다고 써있습니다. 구원이 엄청 어려운 것입니다. 왜 어렵느냐? 구원상실이 많기 때문입니다. 구원까지는 도달할 수 있는데 또 상실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철야하고 금식하고 애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아무도 구원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끈과도 같습니다. 놓으면 떨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세계는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내가 멀어지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붙드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살기 위해서 밥을 먹는 것처럼 내 영생의 구원의 줄을 놓지 않기 위해서 끝까지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처럼 기도에 전무하고 금식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니면 놓쳐버리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어떤 교파나 교회나 예배 출석에 있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내가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감동이 없으면 늘 두렵습니다. 하나님께 물어봤는데 답이 없으면 내가 하나님과 끊어졌나?’라는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 날에 하나님과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늘 내 영이 아직 살아있나?’하고 체크하는 것입니다. 구원상실이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 안에 있을 때 잘 보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복음은 구원을 얻게 하고 잃지 않게 하는데 아주 견고한 복음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 구원관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 있는 내용들입니다. 제가 처음에 1000명 가운데 900명이 거듭나지 못하고 100명이 거듭나고 10명이 구원 받고 1명이 영생을 얻는다는 말을 썼는데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합니다. 이제 아실 것입니다. 성경이 이것을 다 증명합니다. 제가 한 말이 아니라 다 성경에 있는 내용들입니다. 영생은 굉장히 어려운 길입니다. 선지서는 구원상실을 일관되게 설명하고 있으며 그 죄목들이 다 나옵니다. 이런 것들을 성경이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상실이 얼마나 쉬운가를 알고 들어가야 하며 구원을 견고하게 붙드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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