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ospelChurch 박경호 목사 이사야 11장 [예수님의 출생을 기점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며 신자들이 불신자와 공존하면서도 구원이 상실되지 않으므로 대규모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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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1장
[예수님의 출생을 기점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며
신자들이 불신자와 공존하면서도
구원이 상실되지 않으므로
대규모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1절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줄기는 사실 가지입니다. 이새라는 뿌리에서 올라왔습니다. 누구일까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올라온 게 누구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입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서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이새에게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거기서 한 명만 구원받고 한 명만 은혜의 세계에 들어갑니다. 당연히 이것은 다윗입니다.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오번역입니다. ‘branch’입니다. 앞에 나온 것은 rod라는 단어이며 이것은 branch인데 가지이지만 갈라지는 것이 branch의 원어입니다. 이새의 뿌리에서 갈라지는 ‘a branch’ 한 가지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 상태에서 구원의 원조가 이새라 한다면 이새에게서 다윗이라는 가지가 나와서 많은 구원의 열매가 맺혀졌죠. 이것은 그게 아니라 이 나무에서 ‘roots’ 가장 뿌리에서 분지가 올라와서 어마어마한 큰 열매를 더 많이 맺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그림자입니다. 구약에서 다윗을 보죠. 드디어 예수님을 통해서 다윗과 같은 놀라운 일이 지금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한 번역은 ‘branch’ 분지이며 앞에 나온 rod는 가지입니다. 물론 둘 다 가지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분지입니다. 원어가 다릅니다. 뿌리에서 가지는 다윗, 또 하나는 예수님인데 뿌리에서 온 것은 예수님이며 여기는 다윗이 되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입니다. 누구일까요? 다윗이나 예수님 위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rest’ 머물고 함께하는 것입니다. 어떤 영이냐? 지혜와 ‘understanding’ 총명의 영이시며 ‘counsel’ 성령의 감동과 ‘might’ 귀신을 쫒아내며 어둠을 제압하는 능력의 영이시며 ‘knowledge’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바로 다윗에게 임한 영, 예수님에게 임하신 그 영이 어떤 분이냐? 성령님은 지혜와 총명과 감동과 능력과 지식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런 영이십니다.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강림하시리니’ 강림이라는 표현은 안 좋은 것이며 성령님께서 ‘rest’ 위에 머무시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오번역입니다. 그 영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있어서 ‘quick’ 빠른 총명함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데 영적인 깊은 총명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다윗과 예수님에게 임한 성령님이 아주 빠른 신앙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눈으로 보는 것으로 ‘judge’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심판하느냐? 자기에게 임하신 성령을 통해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자기가 아는 바로 쓰는 게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감동과 성령님의 지혜에서 판단하고 행동하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예수님의 어떤 행동 양식으로 살아가느냐? 자기가 배운 것, 깨달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판단하고 정죄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과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대로 투영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the poor’입니다. the poor은 영적으로 가난한 자이며 거듭나거나 구원을 얻은 자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심판하며’ ‘judge’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들을 심판할까요? judge는 현재 번역을 다시 해야 할 단어입니다. judge라는 단어는 심판이 아닙니다. judge가 무슨 뜻일까요? 성경에서 심판으로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지금 자기를 따르는 자가 the poor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는 자를 정죄해서 벌주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말씀으로 그들을 가르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심판과 testimony가 있습니다. testimony는 천국 가는 말씀이며 judgment는 심판의 말씀입니다. ‘너 이러면 지옥 간다’라고 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는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인도자가 그걸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지옥 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지옥에 가지 않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judge입니다. 그래서 심판은 오해된 것이며 심판의 말씀으로 그것을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오번역입니다. 땅의 ‘meek’ 온유한 자,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with equity’ 공명정대함으로 ‘reprove’ 책망하는 것입니다. 구원 안에 들어오고 있지 않았는데 그 사람들도 마음으로 받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meek입니다. 그러니까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돌아서라고 그에게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예수님 안에 있지 않지만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이것은 천국에 올 수 없는 상태로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들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아, 서기관들아! 화있다!’라고 하며 정죄하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사람들을 정죄해서 입의 막대기로 ‘smite’ 치는 것입니다.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입술의 ‘breath’ 호흡으로 악한 자들을 ‘slay’ 죽인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심판으로 지옥에 던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심판입니다.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들을 쫒아내고 불신자를 향해서 지옥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지옥에 던지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loin’ 허리가 아닙니다. loin도 잘못된 번역입니다. loin은 허리가 아닙니다. 생식기입니다. ‘loins’ 복수입니다. 난소도 두 개, 고환도 두 개입니다. 그런데 전부 다 허리로 번역합니다. 허리에서 자손이 못 나옵니다. 다 생식기에서 나옵니다. 생식기에 대한 오번역입니다. 성경은 번역할 때 생식기를 많이 피해갑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허리라고 번역된 대부분은 오번역이 많습니다. 사실은 생식기입니다. 의로 생식기를 girdle하는 것입니다. girdle은 ‘띠를 띠다, 감싸다, 보호하다’입니다. 의인이 되어야만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의인이 또 다른 의인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으로써 의인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원히 살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그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들을 의인으로 회개시키러 왔노라’입니다. 의인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loins’ 생식기입니다. 의인으로서의 띠를 띠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다윗이, 예수님이, 구원받은 그 누군가가 되는 것입니다. 의로워야 되는 것입니다. 생식기가 무엇이냐? 본태적으로 의로운 것입니다.
‘성실로’ 오번역입니다. ‘faithfulness’ ‘믿음직스러움, 충성스러움’입니다. 충성입니다. 의와 믿음에서 믿음입니다.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오번역입니다. rein입니다. 아까 loin은 생식기였고 복수였습니다. 이것도 ‘reins’ 복수입니다. 복수는 단수와 뜻이 다릅니다. reins가 무엇일까요? 콩팥입니다. heart는 마음입니다. 심장과 신장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어떤 사람이 40살에 죽었습니다. 왜 죽었을까요? 제가 볼 때는 간부전이나 간경변, 지방간축입니다. 60살에 죽었습니다. 왜 죽었을까요? 심정사입니다. 심장에 뿌리가 있습니다. 80살에 죽었습니다. 왜 죽었을까요? 심장 내지 신장입니다. 90살에 죽었으면 거의 콩팥입니다. 100살에 죽었으면 100% 콩팥입니다.
죽는 원인이 뿌리가 다른데 젊을 때는 간이나 췌장으로 죽습니다. 60대는 보통 심장으로 죽습니다. 하지만 80살부터는 대부분 신장으로 죽습니다. 책에는 없습니다. 제가 연구한 내용입니다. 콩팥은 망가지면 못 고칩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육식을 금하는 것입니다. 콩팥에 육식은 독이기 때문에 육식을 점점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동물성 단백질이 콩팥을 많이 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콩팥이 중요한데 이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콩팥에는 ACE억제제가 있습니다. 심장과 혈압을 조절하는 물질이 콩팥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혈압 약으로서 ACE억제제가 가장 부작용이 없고 장수물질로 먹는 것입니다. 콩팥이 심장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심장이 최고 뿌리인줄 알았는데 신체의 뿌리는 콩팥에 있습니다. 콩팥이 장수에는 필수입니다. 그래서 콩팥 건강을 위해서 물을 많이 마시고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고 고기를 금하는 것입니다. 또 콩팥은 스트레스에 약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콩팥이 매우 중요합니다. 콩팥은 reins입니다. 지금 무엇을 감싸느냐? 처음에 의가 생식기를 잡은 것처럼 믿음이 콩팥의 띠를 감싸는 것입니다. 믿음이 콩팥을 쥐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과 예수님이 영적인 신체에서 의와 믿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wolf’ 늑대입니다. 원래 늑대의 밥이 어린 양입니다. 늑대는 이방인이며 불신자입니다. 악령입니다. 어린양은 구원받은 자입니다. 불신자가, 늑대가 어린 양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언제일까요? 천년왕국 때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다윗처럼 많은 구원이 확 열려질 복음 확장기 때, 복음전파기간에 있을 일을 지금 예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부터 복음이 많이 증가될 때 있을 일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재림 때나 재림 후나 천년왕국 때가 아닙니다. 드디어 불신자와 신자가 붙어사는 것입니다. 진짜일까요? 지금 그렇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전 지구에서 이스라엘만 구원이 있었습니다. 전 지구에 구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오직 아브라함의 후손만 구원받았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에 복음이 증거 되는데 믿는 자 남편과 불신자 아내, 아내가 늑대이고 남편이 어린양입니다. 그런데 함께 살아갑니다.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은 전부 다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거기는 적어도 늑대는 없습니다. 그런데 늑대가 존재합니다. 왜일까요? 복음이 증거 될 때 이방인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늑대와 자녀인 어린양이 함께 사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은 거짓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오직 천국만이 천년왕국의 상징입니다. 지금 복음전파가 될 때 이새의 뿌리에서 예수님이 나셔서 십자가에서 이기신 다음에 전파가 되는데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합니다.
‘표범이’ 표범 같은 불신자이며 악한 자입니다.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염소는 제사에 쓰이는 동물입니다. 여기서 염소는 불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불신자가 공존하는 것입니다. 표범과 어린 염소가 공존합니다.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사자는 소를 좋아합니다. 누 떼를 다 잡아먹습니다. 지금 다 천적들입니다. 어린 양에게 늑대는 천적입니다. 어린 염소에게 표범은 천적입니다. 다 잡혀먹습니다. 그런데 송아지가 사자와 공존합니다. 원래 잡혀먹어야 되는데 안 잡혀먹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혈통에만 구원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강하시기 때문에 지혜와 총명과 감동과 능력으로 구원상실의 힘을 이기는 것입니다. 드디어 복음전파 시대에는 믿는 자가 갑이 되고 복음을 안 받는 사람들은 을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임했기 때문에 더 센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 복음전파 된 기간에는 구원상실이 적은 것입니다.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살진 짐승은 적군일까요? 아군일까요? 이것은 애매한 것입니다. 살졌다고 적군도 아니고 아군도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믿는 자도 아니고 불신자도 아닌 애매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오번역입니다. 앞에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문장이 바뀌어서 ‘little child’ 어린 아이가 그들을 ‘lead’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인도할 수 있나요?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아니라 여기 나온 모두를 의미합니다. 늑대와 표범과 어린사자와 어린양과 어린염소와 송아지와 살진 짐승 전부 다를 의미합니다. 전부 다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작아 보이지만, 약해보이지만 불신자들을 lead하는 것입니다. 복음전파 기간에는 믿는 자가 불신자를 영적으로 lead합니다. 대 환란 때는 거꾸로 입니다. 불신자가 믿는 자를 lead합니다. 드디어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는데 점점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리더가 됩니다. 불신자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곰이 암소를 놔두겠습니까? 거대한 자입니다. 곰도 엄청 혈기가 많은 자입니다.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그 거대한, 영적으로 아주 악한 자와 영적으로 선한 자가 함께 있으면서 새끼들이 함께 공존하는 것입니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거봐, 천년왕국 때는 육식을 안 해’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사자는 마귀의 편에 있는 불신자입니다. 풀은 소가 먹는데 소는 정결한 짐승입니다. 믿는 자입니다. 불신자가 믿는 자를 흉내 내고 따라오는 것입니다. ‘어, 쟤가 풀 먹네! 예배드리네! 주일성수하네! 제사 드리지 않네! 술 마시지 않네! 간음하지 않네! 의롭게 사네!’ 신약시대에 복음전파 기간에 그들이 우리를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 악한 자들이 선한 송아지와 소와 암소가 되어 이쪽으로 끌려 와지는 것입니다.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전파 기간에 나타날 현상들입니다. 지금은 이것이 끝났습니다. 지금은 거꾸로 어린 양들이 맹수를 따라갑니다. 목회자가 이단이 되면 다 몰려듭니다. 신기합니다. 지금은 불신자가, 악한 자가 lead합니다. 악할수록 잘 됩니다. 하지만 과거에 제가 어릴 때 70년대에는 은혜가 lead했습니다. 주일학교에 일반 동네 불신자들이 따라왔습니다. 와서 빵을 먹고 시청각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택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이것은 복음전파 기간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그것은 끝났습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능력과 은혜가 부어지는 전파기 때 주시는 말씀입니다.
8절입니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젖 먹는 아이가’ 거듭나고서 얼마 안 된 것입니다.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독사는 작은 뱀입니다. 독사가 있는데 손을 넣으면 물려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 물립니다. 왜 안 물리느냐? 예수님이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전파기간에는 어린 성도들도 다 잘 자랍니다. 구원상실을 당하지 않습니다. 독사에게 손을 넣어도 영이 잘 안 죽습니다. 영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물리지 않고 이기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거듭난 영혼이 얼마나 약하겠습니까? 그런데 물리질 않습니다. 그래서 성장할 때 거침이 없는 것입니다. 잘 성장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대 환란 때는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 있다’입니다. 거듭난 영혼들이 영적으로 다 죽습니다. 얼마나 그 세력이 강하면 다 죽는 것입니다. 거꾸로 이 때는 어린 영혼들도 다 잘 성장합니다. 구원상실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젖 뗀 어린 아이가’ 드디어 영적인 아기가 아니라 아이가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거듭난 다음에 조금 지났습니다.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오번역입니다. ‘cockatrice’ 괴물입니다. 당연히 마귀입니다. 마귀들의 ‘den’ 소굴에 손을 넣어도 안 죽습니다. 세상이 무도한 악에 가득 차도 복음전파기간에는 거듭난 영혼들이 그 악들을 다 이기는 것입니다. 승리합니다. 왜일까요? 다윗에게 임한, 예수님에게 임한 그 영이 강하기 때문에 다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을 넣어도 안 죽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안 가도 죽습니다. 지금은 영이 다 죽어나갑니다. 독사, 작은 독사, 특히 큰 독사는 금새 다 구원상실 됩니다. 구원이 한 번에 끝나버립니다.
지금은 이 때랑 다릅니다. 지금은 구원도 쉽게 잃어버려지며 마귀를 이기기 힘든 시기입니다. 이 때는 좋았습니다. 쉽게 구원받고 쉽게 거듭났습니다. 영화를 보면 미국에서 대규모로 회개하고 막 통회하고 합니다. 책에도 많이 나옵니다. 지금은 이것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1950년 이전의 미국 영화를 보면 다 인색이 좋습니다. 노래들도 거룩합니다. 하지만 점점 어두워지고 영화들도 안 좋아집니다. 과거에 은혜가 충만했던 영국의 1950년 이전의 영화를 보면 그 은혜가 기가 막힙니다. 은혜들이 그냥 묻어있습니다. 지금은 어떤 영화도 다 공포스럽고 음란하고 더럽고 추악합니다.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영적으로 망조입니다.
어두운 사람이 교회를 운영하는데 교회에서 어두울수록 인기가 좋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옛날에는 은혜 있는 자가 교회에서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금은 교회에서 악할수록 인기가 좋고 악할수록 사람들이 존경합니다. 왜일까요? 그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는 선해야 존경받고 선을 따라갔습니다. 지금은 악을 따라갑니다. 정말 무서운 세계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복음전파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반대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굉장히 하루하루가 무서운 시대입니다. 다른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예전과 너무 많이 다릅니다.
9절입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보호받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많이 악해도, 인간이 아무리 많이 더러워도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주시면 우리는 살아남는 것입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유가 무엇이냐? 지식은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드디어 점점 하나님을 많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번역되고 말씀을 공부하고 점점 하나님을 많이 알게 되면서 신약기간 동안에 깨는 것입니다. 점점 기독교가 발전되며 점점 숫자가 늘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지구의 70%가 물로 덮였죠. 이제 전 세계가 하나님을 아는 지혜로 덮임을 상징합니다.
10절입니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오번역입니다. 그 날에 이새의 ‘root’ 뿌리가 ‘shall be’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누구일까요?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ensign’ 깃발을 대입할 거라는 것입니다. 이제 유대교가 끝이 나고 신교가 탄생되는데 드디어 기독교가 탄생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깃발, 구약 때 있던 깃발이 아닌 새 깃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깃발로 새 깃발이 서는데 이새의 뿌리에 있는 것입니다. 또 ‘Gentiles’ 이방인들이 ‘to it’ 그것으로 seek할 거라는 것입니다. seek는 ‘찾다, 가다’입니다. 이제 이방인들이 복음전파 기간에 예수님께 달려오는 것입니다. ‘to it’ 깃발 아래, 새로운 기독교에 드디어 몰려옵니다. 이방인들이 다 몰려와서 유대교에 있었던 함축된 기독교가 전 세계에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오번역입니다. ‘his rest’ 안식처입니다. 제가 구약을 번역할 때 구약 천국 때문에 ‘안식처로 해야 하는 건가?’라고 고민을 많이 했죠. 이것은 안식처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rest가 많이 나옵니다. ‘구약 천국을 안식처로 할까?’라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사실 이것이 낙원 천국입니다. 그분의 안식처가 ‘glorious’ 영화로울 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드디어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일어나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11절입니다.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오번역입니다. ‘다시’가 아니라 ‘second time’입니다. 첫 번째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루어내는 구원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내는 구원을 말합니다. 다시 두 번째, 하나님께서 백성의 ‘remnant’ 남은 자를 ‘recover’ 회복하도록 자기 손을 펴신다는 것입니다. 언제? ‘두 번째로’입니다. remnant는 구원상실이 있지 않은 자입니다. 구약 때도 구원상실을 당해서 remnant가 많지 않았죠. 신약 때도 remnant가, 구원상실을 당하지 않은 영생 얻을 자가 있는데 그들에게 이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구약 때도 남은 자 소수를 남겼던 것처럼 신약 때도 마찬가지로 구원상실이 있는데 두 번째 remnant가 다시 천국에 가도록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디일까요? ‘앗수르와’ 앗수르는 티그리스강 상류입니다. ‘애굽과’ 애굽은 나일강 하류입니다. ‘바드로스와’ 바드로스는 현재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입니다. ‘구스와’ 구스는 나일강 상류, 에티오피아입니다. ‘엘람과’ 엘람은 이란입니다. ‘시날과’ 시날은 이라크입니다. ‘하맛과’ 하맛은 시리아입니다. 이 지역들이 어떤 지역들일까요? 이 지역들은 그리스의 침공 이후로, 로마의 침공 이후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흩어진 곳입니다.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이란과 이라크와 시리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흩어진 지역들입니다.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그러면 유대인들이 구원받느냐? 아닙니다. 이것은 상징입니다. 유대인들이 세계적으로 흩어진 것처럼 흩어진 이방인들에 대한 돌아옴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것 때문에 ‘그래! 시온에 가자!’라고 해서 독립했습니다. 왜? 성경에 이런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거봐! 앗수르에서, 애굽에서 다시 돌아온다잖아’라고 해서 현재의 이스라엘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그 말씀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구원받은 자를 상징하는데 옛날에는 모여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흩어져있죠. 흩어진 자들을 유대인, 구원으로 오게 하겠다는 약속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거봐! 구약에 써 있잖아. 팔레스타인, 나가! 우리 땅이야! 성경에 그렇게 써 있잖아’라고 주장하며 온 것이 현재의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오해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구원이 유대에만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구원이 온 세계에 퍼졌는데 마치 그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처럼 영적인 무형교회를 상징합니다. 이방인들에게 흩어진 유대인들이 구원 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것은 깃발입니다.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 이것은 과거에 유대교가 개처럼 취급하던 사람들, 이방인들을 다시 영적인 세계로 모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드디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감을 상징합니다.
13절입니다.
에브라임의 질투는 없어지고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들은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질투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에브라임의 질투는 없어지고’ 에브라임은 사사기 시대 동안에 신앙의 메카였습니다. 사울 왕 때는 신앙의 메카, 중심부가 베냐민 지파로 내려오며 다윗 때는 유대로 내려옵니다. 그런데 에브라임은 구원이 어려웠습니다. 어디가 구원이 많이 일어나느냐? 유대입니다. 유대는 구원의 메카입니다. 에브라임은 오늘날 이방인들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이방인들에게는 구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유대를 질투했습니다. 이스라엘만 구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질투한다는 것은 영적인 질투입니다. ‘왜 저기만 구원 받냐?’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에브라임은 산당이 많았고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에브라임이 볼 때는 ‘왜 저기 가야만 되느냐?’라고 해서 산당에서 예배를 많이 드렸습니다. 그래서 왕들이 산당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왜? 예루살렘은 유다이고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입니다. ‘내려가지 마! 여기서 예배드려!’라고 하며 산당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구원상실의 이유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에브라임은 유대를 질투했습니다. 저기만 예배가 있고 저기만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방인들에게는 구원이 없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늘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질투하지 않습니다. 그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왔기 때문입니다.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들은 끊어지며’ 유다의 대적자입니다. 구원상실을 주는 존재에 대한 표현입니다. 드디어 끊어지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유다를 질투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차별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유대인에서 이방인까지 다 공평하게 가기 때문에 질투하지 않고 차별이 사라집니다.
14절입니다.
그들이 서쪽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어깨에 날아 앉고 함께 동방 백성을 노략하며 에돔과 모압에 손을 대며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리라
‘그들이 서쪽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어깨에 날아 앉고’ 블레셋은 구원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존재입니다. 대적자입니다. 지금 블레셋은 유대의 적인데도 적에게 복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적들이 복음으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집니다. 원래는 블레셋이 유대의 공격자죠. 드디어 많은 대적들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로마도 무너지고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드디어 블레셋에 복음이 들어갑니다.
‘함께 동방 백성을 노략하며’ 동방은 구원상실 된 자들입니다. 대적자입니다. 그런데 ‘spoil’입니다. 복음이 어디까지 무너뜨리느냐? 복음을 잃어버린 자들에게도 들어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에돔과 모압에 손을 대며’ 이단입니다. 이단에게도, 타종교에도 복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복음전파 기간에는 블레셋도 무너지고 복음이 들어가고 중동에도 들어가고 에돔과 모압에도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리라’ 암몬도 이단입니다. 이단과 타종교가 몽땅 복음 앞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것입니다. 왜? 지금은 거꾸로 참교회가 무너집니다. 과거에 복음전파 기간에는 기독교가 많은 것들을 무너뜨렸으나 지금은 거꾸로 기독교가 무너지는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기독교의 안티들이 부활하고 있으며 거꾸로 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해만을 말리시고 그의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 그 하수를 쳐 일곱 갈래로 나누어 신을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애굽 해만을’ 오번역입니다. 애굽 바다의 ‘tongue’ 혀입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나일 삼각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삼각주에서, 고센 땅에서 다 구원을 잃어버리죠. 야곱의 후손들이 삼각주에서 다 구원을 잃어버립니다. 구원상실의 장소, 애굽 바다의 혀입니다. 엄청 넓은 지역입니다. ‘말리시고’ 구원상실을 주는 것을 드디어 이기는 것입니다. ‘그의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 그 하수를 쳐 일곱 갈래로 나누어’ 유브라데는 구원상실의 강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유브라데는 구원상실을 말합니다. 거기를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곱 강입니다. 구원을 의미합니다. 구원상실입니다. 그래서 강이 일곱 개라고 되어있습니다. 일곱 개를 치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느냐? 쳐서 ‘dryshod’입니다. 이 뜻은 ‘신발이 물에 젖지 아니하고’입니다. 구원상실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브라데 강은 구원상실의 강입니다. 그런데 건너는데 물에 안 젖고 건너는 것입니다. 복음전파 기간에는 구원상실의 위기를 이기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그의 남아 있는 백성 곧 앗수르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그의 남아 있는 백성 곧 앗수르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앗수르는 상징인데 구원상실을 주는 세상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건 신약시대입니다. 신약시대에도 앗수르의 남은 자들, remnant입니다. 영생을 누릴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무엇이 준비되느냐? ‘highway’입니다. 남은 자들, 영생을 누릴 자들에게 highway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오늘의 결론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remnant는 구원상실을 이긴 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구원 받고 천국 갑니다. 어차피 천국에 가는데 highway가 왜 있을까요? 구약 때도 highway입니다. 구약 때도 구원받으면 남은 자들은 영생에 가는 것입니다. 구약 때도 신약 때도 똑같이 remnant는 확정된 사람들입니다. 구약 때도 remnant는 천국 가는 것이고 신약 때도 복음전파 기간에 천국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highway가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윗 때보다 더 넓은, 많은 은혜를 가지고 복음전파 기간에 구원상실을 안 당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결론적으로 무엇을 줄까요? remnant들이 highway를 갑니다. highway가 무엇일까요? 구약 때와 신약 때는 한 가지 차이입니다. highway가 다릅니다. 둘 다 천국 가는데 highway 차이입니다. remnant는 구원확정 된 자들이며 어차피 천국 갑니다. 그런데 highway가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잘 정리하면 이것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독사에게 손을 넣어도 물리지 않는데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일까요? 유브라데 강도 마르고 애굽 바다도 말라서 쉽게 구원이 확정되는 것인데 결론이 무엇일까요? 구약 때와 무엇이 다를까요? highway가 키워드입니다. 왜 이새에서 처음에는 가지이고 나오면 분지일까요?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다윗과 예수님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신약 시대에는 훨씬 많은 자가 remnant가 된다는 약속입니다. 다윗 때보다 훨씬 많은 자가 remnant가 되어서 천국에 간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BC 800년 전에 약속되었던 것입니다. ‘너희가 다윗 때를 그리워하지? 걱정하지 마. 나중에는 능가하는 것이 일어나. 그 때는 독사에게 손을 넣어도 구원상실을 안 당해. 그 때는 표범들과 사자들이 같이 놀아도 구원상실을 안 당해. 드디어 이방인들에게 퍼져서 수가 훨씬 많아져’라는 것입니다. 대규모의 복음전파 기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 가운데 가장 많은 기간이 초림부터 2000년까지입니다. 노아 전, 많지 않았습니다.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많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후대에서 조금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60만 명, 대규모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초림부터 2000년까지 대규모 구원이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대 추수 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 추수 때는 지났습니다. 대 추수는 1600년도부터 2000년까지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지막 늦은 비를 말해요’라고 말합니다. 늦은 비는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대 환란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좋은 시절은 다 갔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마지막 때, 대 추수 때라고 주장합니다. 몰라서 그렇습니다. 이제 지나가면 이 내용들이 알려집니다. 지금은 기독교가 꺾였습니다. 이런 일이 안 일어납니다. 손을 넣으면 안 됩니다. 잡혀먹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불신자에게 먹히는 시대입니다. 불신자가 우리말을 안 듣습니다. 앞으로는 믿는 자가 다 타락하는 시대에 살게 됩니다. 나중에 몇 명이 남느냐? 지구상에서 손에 꼽게 됩니다. 노아 때처럼 다 타락합니다. 드디어 줄어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우리를 많이 만드십니다. 나중에는 이것을 추리시고 또 추리십니다. 점점 의인들이 줄어들며 이것이 어려워집니다. 이사야서는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구약입니다. 구원을 가장 많이 잘 묘사했으며 신구약을 총 망라한 것이 이사야서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를 보면 신기하게도 아담부터 재림까지가 다 나와 있습니다. 재림과 재림 상황도 잘 나와 있습니다. 놀라울 정도입니다. 지금은 초림을 봤는데 계속 나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깊이는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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