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이사야 28장 [유대교가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실패하였지만, 예수님께서 천국의 기초돌이 되셔서 다양한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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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박경호번역성경  상세정보 보기 &  책 구입하러가기(URL 클릭!) www.4gospelchurchbooks.com   이사야 28 장 [유대교가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실패하였지만, 예수님께서 천국의 기초돌이 되셔서 다양한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 주십니다] 1 절입니다 .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 사실 이 선지서는 우리말로 볼 수가 없습니다 . 왜냐하면 이게 너무 오번역이 많기 때문입니다 . ‘woe’ ‘ 화로다 ’ 입니다 . 그러니까 지옥이죠 . 누구냐면 ‘the crown of pride’ ‘ 교만의 면류관에게 ’ 입니다 . 누구냐 ?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입니다 .   에브라임은 산당이 많은 곳이죠 . 유대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 성전에서만 구원이 존재하지 산당은 사실 구원이 희박한 곳입니다 . 그러니까 산당도 예배처지만 산당 예배는 법궤가 없기 때문에 , 그러니까 구원이 어렵기 때문에 항상 구원은 예루살렘과 유다 쪽으로 나온 것입니다 .   에브라임은 예배를 드리지만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그런 것입니다 . 현재 있는 북이스라엘입니다 . 그래서 이것은 지금 잘못된 예배를 드리는 어떤 사람을 알 수도 있습니다 .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 ‘glorious beauty’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이 ‘fading flower’ 사라지는 , 지는 꽃입니다 .   그들이 영광이 있습니다 . 그 속에도 영광이 있습니다 . 그런데 지는 꽃입니다 . 원래 꽃이 지면 안 됩니다 . 꽃이 지면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 이것은 일시적으로 은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이것이 중요합니다 .   우리가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세계에서도 꽃이 있습니다 . 그런데 지는 꽃입니다 . 나중에 구원이 안 됩니다 . 그래서 일

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이사야 22장 [대환란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복음전파기간의 은혜를 다시 끌어들이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운 자들이 타락의 힘을 이기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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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22

[대환란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복음전파기간의 은혜를

다시 끌어들이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운 자들이

타락의 힘을 이기지 못합니다]



1절입니다.

환상의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찌함인고

 

환상의 골짜기에 관한 ‘burden’ 요약입니다. 성경에서 환상 가운데 산이면 올라가는 것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산은 예배를 의미하기도 하고 영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환상에서 골짜기는 내려가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영이 죽거나 육이 죽거나, 이런 골짜기는 굉장히 안 좋은 것입니다. 골짜기를 내려가는 것은 영적인 추락을 많이 의미하며 골짜기는 신앙의 붕괴를 많이 의미합니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면 신앙이 사는 것이고 골짜기를 내려가면 죽는 것인데 환상의 골짜기입니다. 그러면 환상을 보는 골짜기인지 환상 가운데 있는 골짜기인지, 이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제가 볼 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을 환상 가운데 보았기 때문에 명명할 때 환상의 골짜기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곳은 선지자들이 모여서 계시받는 곳이다라고 이해하면 틀린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골짜기를 보았는데 이 골짜기는 내가 환상 가운데 근래의 얘기가 아니라 아주 먼 얘기를, 먼 미래의 일들을 지금 미리 보았기 때문에 환상이라는 단어를 넣었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환상의 골짜기가 따로 있어서 환상만 보는 곳이라고 이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존의 많은 분들이 이런 것을 이해할 때 거기는 선지자들이 와서 거기서 계시받는 곳이야라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이것은 먼 훗날 나에게 조명된 ‘vision’ 보여진 골짜기라는 면에서 골짜기입니다.

 

과연 이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대환란입니다. 대환란이 구약에 많이 묘사됩니다. 물론 다니엘이 정확히 묘사했지만 곳곳에 대환란이 묘사되는데 너무 정확히 묘사됩니다. 그래서 이 대환란, 이 모형을 이해하면서 아 이게 대환란이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찌함인고오번역입니다. ‘무엇이 너를 괴롭히길래 네가 완전히 지붕 위로 올라가느냐?’입니다. 어떤 고통이 오는데 영적인 고통이 와서 드디어 올라갑니다. 지붕은 환상적으로 이해할 때 일반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 사람이 지금 어떤 고통이 왔는데 자기도 모르게 올라왔습니다. 올라왔는데 지붕은 전파하는 장소, 전파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까 전파자가 된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어떤 고통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널 괴롭히느냐? 네가 온전히 지붕 위로 올라간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라고 지금 시작되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소란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들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라

 

‘stirs’ 너는 소동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는 대환란 기간의 입니다. 그리고 들썩이는, 떠들썩한 성이며 기뻐하는 성인데 너의 살상된 사람들이 칼로 살상된 것도 아니고 전투로 살상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살상된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은 영적인 살상, 바로 구원상실을 의미합니다. 이 성은 예루살렘 성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성을 볼 때 이 성은 예루살렘이냐? 아니냐?’인데 이것은 예루살렘입니다. 구원받은 성이 떠들썩하게 일어나는데 영이 다 죽는 것입니다. 구원을 잃어버리는 대규모 살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너의 관원들도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들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

 

너의 관원들도이것은 예루살렘 성에서 지배하는, 다스리는, 말씀을 가르치거나 말씀을 증거하는 영적으로 높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함께 도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archers’ 궁수들, 활 쏘는 자에 의해서 묶인다는 것입니다. 활 쏘는 자가 활을 쏘지 왜 묶습니까? 활 쏘는 자는 마귀의 군병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환상 가운데 활을 쏘는 것은 마귀입니다. 마귀들이 활을 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구원받은 사람 가운데 종교 지도자들이 마귀에게서 묶이는 것입니다. 마귀를 내가 묶으면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고 거꾸로 내가 묶이면 내가 약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 그냥 죽는 게 아니라 먼저 묶이고 죽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귀신도 두 단계로 일어나죠. 내가 마귀를 묶은 다음에 추방이 있지 그냥 안 나갑니다. 묶는 단계가 있습니다. 드디어 마귀에게 묶이는 것입니다. 누가? 관원들이, 예배인도자들이 마귀에게 묶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안에 발견된 모두가 함께 다 묶인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 전체가 다 묶이는 것입니다. 대환란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구원의 성인 예루살렘 성이 몽땅 묶이는데 어디까지냐? ‘from far’ ‘멀리 도망한 자까지도입니다. 도망이 안 되는 것입니다. 환상의 골짜기에서는, 쉽게 말하면 대환란 때는 구원상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극심했냐면 다니엘이 말하기를 이런 환란이 전에도 없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으로 야곱 이후로 애굽에서 430년 동안 대환란이 있었죠. 예수님 전에 말라기 때부터 400년 동안 대환란이 있었죠. 또 유다에 바벨론이 침공해서 대환란이 있었습니다. 이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환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재림 전의 대환란이며 마귀에게서 모두 묶이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나를 바라보지 말고 나를 비켜 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똑바로 보지 말고 나를 보지 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럴 수가 있나요? 당연히 믿는 자가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데 나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아마 둘 중에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대환란 때는 많은 자들이 마귀를 하나님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인식할 때 거기서 미혹되어서 지옥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바라보는 것으로 되는 게 아니야라고 바라봄, 비전 쪽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나는 슬피 울 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입니다.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백성의 ‘daughter’ 딸들입니다. 딸이라는 것은 예루살렘 안의 딸들입니다. 구원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그들이 ‘spoiling’ 약탈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마귀에게서 다 구원을 잃어버리는 약탈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슬피 울고 날 위로를 못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딸을 20년 동안 키웠는데 갑자기 딸이 괴한에게 납치되어서 죽었습니다. 이 슬픔을 우리가 이길 수 있나요? 못 이깁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키워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괴한이 나타나서 가서 죽었습니다. 이것은 위로를 못 받습니다.

 

5절입니다.

환상의 골짜기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이르는 소란과 밟힘과 혼란의 날이여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쳐 부르짖는 소리로다

 

오번역입니다. 그 날은 고통의 날이며 짓밟히는 날이며 당황함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환상의 골짜기에서 만군의 여호와에 의해서 일어난 것입니다. 어떤 일이냐? 성벽을 허물어뜨린 것입니다. 성벽이 많이 나오죠. 성벽이 있고 성전이 있는데 마귀가 성벽을 무너뜨리면 구원이 위태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전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드디어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들의 부르짖음입니다. 산이라 함은 영적인 부르짖음입니다. 구원을 잃어버리는 과정 가운데 영적인 탄성이 있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엘람 사람은 화살통을 메었고 병거 탄 자와 마병이 함께 하였고 기르 사람은 방패를 드러냈으니

 

오번역입니다. ‘chariots of men’입니다. ‘chariot’은 병거, 마차입니다. ‘of men’입니다. 지난번에 마병 할 때 했죠. 이것은 저승사자 또는 천국에 있는 인도하는 천사들입니다. 그리고 마병과 함께입니다. 엘람 사람은 무엇일까요? 지난번에 나왔죠. 지옥에 있는 자가 엘람입니다. 귀신일 수도 있고 악령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화살통을 메었다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악한 자가 지상에 있는 예루살렘, 구원받은 자를 향해서 갖고 나가서 지옥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승사자를 보내서 다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기르기르는 바벨론이 아니라 앗시리아에 있는 성입니다. 한 도시입니다. 앗수르는 구원상실의 영이죠. 기르가 큰 방패를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영들이 드디어 구원상실을 준다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병거는 네 아름다운 골짜기에 가득하였고 마병은 성문에 정렬되었도다

 

네 아름다운 계곡입니다. 아름다울 수가 있나요? 이 계곡이 처참할 텐데 왜 아름답다고 할까요? 마귀 입장에서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마귀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굉장히 나쁘게 보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상합니다. 마귀가 깊이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사람이 굉장히 나쁘게 보이고 자기들의 세계가 되게 아름답게 보입니다. ‘아름답다는 개념은 그들이 볼 때의 관점입니다. 대환란은 우리가 볼 때는 아주 치명적이고 처절한 광경인데 그들이 볼 때는 대환란이 진짜 좋아 보이는 것입니다. ? 자기들이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골짜기가 ‘chariots’로 가득 찬 것입니다. 이것은 대환란 때 지옥으로 인도하는 마차로 가득 찬 것입니다. 또 마병들은 성문에 잘 정돈된 것입니다. 마병과 마차가 함께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오는데 이 지옥에서 그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대환란 기간 때입니다. 그래서 항상 대기합니다. 계속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8절입니다.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그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그가오번역입니다. ‘he’는 제가 볼 때는 하나님입니다. ‘그분입니다. 그분이 유다에서 덮은 것을 벗겼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구원받은 자죠. 구원받은 자가 드디어 깨달은 것입니다. 몰랐다가 안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안 것입니다. ‘구원상실이 있네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에 그 숲의 집에 있는 무기를 그때 네가 보았다는 것입니다. 구원상실을 주는 악한 영과 싸우는 무기들을 발견한 것입니다. ‘내가 이겨야겠다하고 눈이 뜨인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대환란 때 구원받은 사람에게 눈을 뜨이게 하셔서 무기를 발견하게 하신 것입니다.

 

9절입니다.

너희가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랫못의 물도 모으며

 

너희가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오번역입니다. ‘breaches’입니다. ‘breaches’는 틈, 터진 곳입니다. 다윗의 성이 있는데 이 성의 한 부분이 터진 것입니다. 성벽이 함몰된 지역입니다. 터진 곳이 있는데 되게 많다는 것입니다. 성벽이 한 번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터진 곳으로 성벽을 통해 무너지는데 점점 무너짐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너희는 아래의 웅덩이의 물들을 모으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에는 저수지가 2개가 있습니다. 윗 저수지가 기온샘입니다. 이것은 위에 있는 웅덩이인데 산헤립이 들어왔을 때, 앗시리아가 들어왔을 때 히스기야가 전투용으로 아래 웅덩이를 팝니다. 그래서 밑에 웅덩이를 만듭니다. 윗 웅덩이와 아래 웅덩이가 있는데 이 기온샘이 윗 웅덩이입니다. 그런데 아래 웅덩이의 물을 모은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모을까요? 윗 웅덩이에서 도랑을 파서 물이 오게 만듭니다. 이 윗 웅덩이는 복음전파 기간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아래 웅덩이는 대환란 때의 은혜입니다. 히스기야가 산헤립이 쳐들어왔을 때 이것을 파서 적들과 싸울 때 식수로 쓰는데 지금 아래 웅덩이를 파라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하게도 하며

 

이제 성벽을 견고하게 해서 못 들어오게 예방하는 것입니다. 대환란 기간 동안에 눈을 뜨게 한 자가 아는 것입니다. ‘이제 성벽을 건축해서 우리의 신앙을 지켜야겠다해서 가옥을 헐어 성벽을 건축합니다.

11절입니다.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옛 못이 위의 기온샘입니다.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오번역입니다. ‘ditch’ 도랑입니다. 위에 있는 샘에서 물이 흘러오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대환란 때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요? 대환란 때는 복음전파 기간에 역사했던 성령의 동일한 은혜가 대환란 때 오도록 도랑을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전파 기간에 성령의 역사가 있었는데 이 역사를 다시 빨아들여야 함을 말합니다.

 

우리는 대환란 기간에 살고 있는데 교회가 지금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우리 어릴 때 모습이 전혀 다릅니다. 하늘과 땅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어릴 때 가졌던 그 신앙을 다시 파이프를 연결해서 받아들이는 것으로 유다에게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그 만든 자를 바라보지 아니하였고 우리 전에 그것을 계획한 그분께 공경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이것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설사 눈이 뜨여서 이제 대환란이야. 다 지옥 간다더라라고 많이 알려져도 다 외치기만 합니다. 유튜브에 지옥 다 갑니다라고 많이 나옵니다. 요새는 유튜브에 보면 기독교인 대부분이 지옥 간다고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릅니다. 눈은 조금 뜨였지만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사 눈이 뜨여져도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공식으로 과거의 은혜를 접목해야 하는데 새롭게 뭔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12절입니다.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그 날에그 날은 대환란 때입니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이것이 전파 기간의 은혜입니다. 윗물이 무엇이냐? 바로 애통과 회개입니다. 애통과 회개가 대환란 때 회복해야 할 은혜이지 새로운 은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 지옥을 본다는 게 방법이 아닙니다. 새로운 게 없습니다. 이미 복음전파 기간에 찰스 피니라던지 많은 신앙인들이 한 신앙이 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우리가 본받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때 본받아서 다시 우리도 애통과 회개로 나아가야 하는데 안 한다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이것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애통하지 않고 여전히 세상에 취하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대환란 때는 세상의 문화가 발전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다니엘서에 교통이 발전되고 지식이 발전되고 하는 것이 다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육이 발전됩니다. 볼거리도 많고 즐길 것도, 갈 데도, 먹을 것도 많고 온통 이 땅이 천국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설사 이것을 알았다 할지라도, 깨달았다 할지라도 눈에 보이는 육의 쾌락으로 빠져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 또 죽는 것입니다. 잘 안 되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죄악은 대환란 때 그것을 깨달았고 앎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통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마시고 즐기는 육에 빠진 이 죄입니다. 이 죄를 ‘purged’ 제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를 끝까지 붙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번역입니다. 죽기까지 그 죄를 제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설사 대환란 때 이런 원리를 알고 지옥 가는 것을 알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육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나 좋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왜 좋아합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복을 받으면 세상을 좋아하게 됩니다. 복을 받으면 세상에서 더 살고 싶습니다. 고난을 받으면 더 살기 싫습니다. 복을 받는 게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복에 대한 잘못된 개념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데 복이 엄청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늘 유익을 줍니다. 어려움이 늘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려울 때 회개하는데 회개가 안 되고 복을 받으면 사람은 거기에 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대환란 때는 지금처럼 세상에 핸드폰과 TV와 비디오와 자동차와 비행기와 좋은 것 투성이입니다. 불과 50년 전에는 헐벗었는데, 100년 전에는 진짜 원시인 같이 살았는데 지금 세상은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좋은 게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 영혼을 다 망가뜨리고 피폐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물질 문명과 이런 모든 세상의 쾌락들이 우리를 다 끌고 가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왕궁 맡은 자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treasurer’ 금고를 지키는 자, 회계관리인, 재정장관입니다. 히스기야왕 때 셉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셉나를 재정장관, 국무장관으로 임명합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느냐?

 

16절입니다.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었도다

 

오번역입니다. ‘너는 무엇을 여기서 가지고 있느냐?’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장관을 하니까 돈이 많아서 자기 무덤을 짓는데 엄청 화려하게 짓습니다. 어떻게 짓느냐? 돌을 깎아서 무덤을 만듭니다. 이게 돈이 엄청 들죠. 실제입니다. 이 셉나라는 사람이 실제로 히스기야왕 때 앗수르가 쳐들어오는 와중에 돌산을 사서 거기에 굴을 파서 자기가 들어갈 묘를 만듭니다. 이것이 그 내용을 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위기 때 세웠는데 목회자가, 예배인도자가, 하나님께서 준 지혜자가 자기 영광만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묘실을 만드는 데 쓴 것입니다.

 

네가 그 무덤을 위해서 쪼아내고 그 높은 데 네 무덤에서 그것을 쪼아내서 자신이 살 곳을 바위를 파낸다는 것입니다. ‘조각하다입니다. 이게 돈이 엄청 들어가고 어렵습니다. 자기 무덤 만들려고 정으로 쪼아서 생바위를 파내는 것입니다. 얼마나 화려하겠습니까? 물론 지옥 갔습니다. 이것이 누구냐? 하나님 앞에 맡은 자입니다. 예언입니다. 대환란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말씀을 맡은 자들이 다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다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게 영광을 받고 잘되고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다 쓰고 자기 영광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드디어 하나님께서 열 받으신 것입니다.

 

17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결박하고 장사 같이 세게 던지되

 

오번역입니다. 내가 강한 ‘captivity’ 포로로 너를 대해서 이동할 것인데 분명히 너를 덮을 거라는 것입니다. 영의 눈을 덮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반드시 너를 모질게 감싸서 공 같이 광막한 곳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있으리라

 

그는그분입니다. 반드시 거칠게, 무력적으로 너를 돌려서 큰 나라로 공처럼 던진다는 것입니다. 구원상실입니다. 큰 나라는 앗수르, 지옥입니다. 거기서 너는 죽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의 ‘chariots’입니다. 천국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볼 때는 chariot, 전차가 멋있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멋있고 안 멋있고는 각도 차이입니다. 우리가 볼 때 그것은 정말 저승사자인데 그들은 영광의 chariot입니다. 그 사자가 너의 주의 집에 부끄러울 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높은 위치를 주고 말씀을 주고 인도자로 세웠는데 네가 지옥 가는 자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전차가 너에게는 영광스럽겠지만 하나님의 부끄러움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교회 내에 구원이 없어집니다.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슬픈 얘기가 나오는데 마음이 굉장히 슬픕니다. 다니엘이 대환란의 계시를 받은 다음에 밥을 못 먹었습니다.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너무 슬픈 얘기입니다.

 

19절입니다.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리니

 

드디어 셉나가 바뀌게 됩니다. 히스기야가 그만두라고 합니다. 누구를 세우느냐? 그다음에 나옵니다.

 

20절입니다.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이제 엘리아김이 재무장관을 이어받습니다. 실제로 이어받습니다. 대환란 때 좋은 사람, 엘리아김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영의 눈이 뜨인 사람이며 천국, 지옥을 아는 사람입니다. 대환란 기간에도 진짜 참이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맡았습니다.

 

21절입니다.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의 집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극소수의 참교회를 만들어서 거기에 힘을 실어준 것입니다.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의 집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대환란 기간에도 하나님께서 마치 엘리아김처럼 소수의 참된 목사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좋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22절입니다.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천국의 문입니다. 천국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이것은 빌라델피아 교회에 대한 말씀이죠. 빌라델피아 교회가 영권이 있어서 천국을 여는 교회였습니다. 이것을 전파합니다. 대환란 기간에도 어떤 소수의 참교회가 있어서 그 교회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23절입니다.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 같이 그를 견고하게 하리니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천국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중심에서 선다는 것입니다. 대환란 기간에도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이 아직 존재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완전히 없는 게 아니라 그런 공격 가운데 극소수의 엘리아김이 일어나서 참복음을 전하는데 선다는 것입니다.

 

24절입니다.

그의 아버지 집의 모든 영광이 그 위에 걸리리니 그 후손과 족속 되는 각 작은 그릇 곧 종지로부터 모든 항아리까지니라

 

그의 아버지 집의 모든 영광이 그 위에 걸리리니하나님께서 그에게 영광을 주는 것입니다. 그의 후손과 자손과 자녀들에게, 그리고 조그만 분량의 모든 그릇들에게도입니다. 어디서부터냐? 컵 같이 작은 사이즈의 그릇부터 ‘flagons’입니다. ‘flagons’는 포도주를 담는 큰 그릇입니다. 내가 그에게 영광을 주는데 그 집에 있는 조그만 컵 같은 그릇부터 엄청 큰 그릇까지 영적인 영광을 준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대환란 기간 동안에 참복음을 증거하는 자에게 이러한 복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미 신명기에 네가 순종하면 떡반죽 그릇도 복을 받는다고 써있죠. 그런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슬픈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것이 우리를 굉장히 슬프게 합니다. 그 다음 스토리, 어떤 걸까요? 이것이 정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며 대환란 때 있는 것입니다.

 

25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는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으리니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지므로 그 위에 걸린 물건이 부서지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는대환란 기간입니다. 그 날에는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remove’입니다. 셉나야 타락해서 할 말이 없는데 그렇게 믿었던, 그렇게 믿음의 본을 보여줬던 엘리아김이 제거된다는 것입니다. 제거되고 부서뜨려지고 드디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대환란 때 일반적인 많은 목사들은 지옥 가죠. 하지만 특별히 세운 자를 그 사람에게 희망이 있어하고 따라갔는데 그 사람도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외치고 그렇게 설파했던 참 목자도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슬프고 참혹합니다. 그래서 환상의 골짜기, 다 추락하는 이 영적인 상태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다 추락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광을 주고 영권을 주었는데 그 사람도 떨어져 제거되는 것입니다.

 

그 위에 걸렸던 ‘burden’입니다. ‘burden’은 그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 많은 영혼들이겠죠. 이제 참 목자라고 믿었던 사람도 추락해서 많은 영혼들도 구원으로부터 잘려나간다는 것입니다. 대환란 때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구원받을 자가 손에 꼽는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기간은 많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급격한 감소가 일어나는데 2000년부터 지금까지 외형적으로 기독교 인구만 5억이 감소했습니다. 이것은 약과입니다. 내면적으로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대부분 목회자만이 아니라 참된 목회자들도 다 추락하고 다 떨어집니다.

 

왜일까요? 예언된 것처럼 지옥에서, 바벨론에서 붉은 짐승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올라와서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이기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참복음이 점점 없어지고 너무나 많은 잘못된 것이 다 자리를 잡습니다. 지금을 대환란으로 인식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대환란이 확실한 것입니다. 확실히 대환란입니다. 아니 성경을 떠나서도 온통 세상이 아수라장입니다. 소동에 소동이 꼬리를 물고 재해가 엄청 많습니다.

 

사람들이 지구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합니다. 지구는 얼마 안 남았습니다. 기온상승으로 타 죽고 홍수로 다 묻히고 이것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초입에 있습니다. 이제 이런 기간 동안에 우리는 말씀처럼 애통하고 회개하고 엎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복음을 전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다른 걸 구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데 영혼을 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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