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이사야 28장 [유대교가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실패하였지만, 예수님께서 천국의 기초돌이 되셔서 다양한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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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박경호번역성경  상세정보 보기 &  책 구입하러가기(URL 클릭!) www.4gospelchurchbooks.com   이사야 28 장 [유대교가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실패하였지만, 예수님께서 천국의 기초돌이 되셔서 다양한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 주십니다] 1 절입니다 .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 사실 이 선지서는 우리말로 볼 수가 없습니다 . 왜냐하면 이게 너무 오번역이 많기 때문입니다 . ‘woe’ ‘ 화로다 ’ 입니다 . 그러니까 지옥이죠 . 누구냐면 ‘the crown of pride’ ‘ 교만의 면류관에게 ’ 입니다 . 누구냐 ?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입니다 .   에브라임은 산당이 많은 곳이죠 . 유대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 성전에서만 구원이 존재하지 산당은 사실 구원이 희박한 곳입니다 . 그러니까 산당도 예배처지만 산당 예배는 법궤가 없기 때문에 , 그러니까 구원이 어렵기 때문에 항상 구원은 예루살렘과 유다 쪽으로 나온 것입니다 .   에브라임은 예배를 드리지만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그런 것입니다 . 현재 있는 북이스라엘입니다 . 그래서 이것은 지금 잘못된 예배를 드리는 어떤 사람을 알 수도 있습니다 .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 ‘glorious beauty’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이 ‘fading flower’ 사라지는 , 지는 꽃입니다 .   그들이 영광이 있습니다 . 그 속에도 영광이 있습니다 . 그런데 지는 꽃입니다 . 원래 꽃이 지면 안 됩니다 . 꽃이 지면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 이것은 일시적으로 은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이것이 중요합니다 .   우리가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세계에서도 꽃이 있습니다 . 그런데 지는 꽃입니다 . 나중에 구원이 안 됩니다 . 그래서 일

4GospelChurch 박경호목사 이사야 26장 [온세상에 복음전파가 이루어진 후, 구원을 낳지못하는 대환란이 이어질 때 가짜크리스챤들이 진짜 행세하며, 온세상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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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26

[온세상에 복음전파가 이루어진 후,

구원을 낳지못하는 대환란이 이어질 때

가짜 크리스챤들이 진짜 행세하며,

온세상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됩니다]



1절입니다.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그 날에보통 선지서에서 그날이라고 하면 심판의 날이냐, 또는 신약 기간이냐, 또는 낙원에 올라가는 날이냐, 아니면 특정 기간이냐라는 생각을 할 때 앞뒤 문맥을 봐야 하는데 여기서 그날이라는 것은 아마 신약 기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다 땅에서유다 땅은 낙원 천국이 아니라 이 땅의 구원받은 자들의 땅을 말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신약 기간에 구원받은 자들이 있는데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리라오번역입니다. ‘이 노래가 불려지리라입니다. 어떤 노래이냐? ‘우리는 강한 성을 가지고 있다입니다. 이것이 노래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신약 기간 동안에 우리는 강한 성이 있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은 구원의 성이며 강하다는 것은 구원이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하나님께서 성벽과 ‘bulwarks’ 방어벽으로 ‘appoint’ 지정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구원이라는 것은 명확하게 구원 밖이 있고 구원 안이 있다는 묘사입니다. 더 나아가서 구원은 명확한 구조물이지 애매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이해할 때 구원을 애매하게 느낄 수 있지만 구원 자체는 선명한 것입니다. ‘너는 구원받았어이것은 선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것은 그냥 어렴풋하게 내가 죽으면 알죠가 아닙니다. 물론 죽으면 알죠. 하지만 현재 이 땅에서 구원은 존재하는데 유다 땅, 낙원이 아니라 이 땅에서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너는 구원받은 자야’, ‘아니야하고 구원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너희는 문들을 열어라입니다. 왜 여느냐? ‘진리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입니다. 여기서 나라는 구원받은 자가 나라입니다. 성경에서 나라를 쓸 때 어느 민족이나 국가로 이해하지만 그렇지 않고 나라는 여기서는 어떤 한 개인이나 어떤 구원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의로운 나라가 ‘may enter in’ ‘들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입니다. 드디어 진리는 하나님 말씀, 천국 가는 진리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실제로 들어갈 수 있는 영적인 구조물입니다. 구원은 실제로 구원에 들어갈 수가 있고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우리가 들어오고 나가고가 가능한, 가변적인 구조물입니다. 낙원 천국은 고정되었습니다.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구원의 성은 가변적인데 드디어 의롭게 진리를 향하면 다시 또 구원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들어옵니다.

 

3절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오번역입니다. 당신은 ‘perfect peace’ 완전한 평안으로 그를 지키실 거라는 것입니다. 구원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그 안에서는 하나님이, 예수님이 그 성주가 되셔서 완전한 평안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증상은 평안입니다. 그래서 평안찬송은 구원찬송 다음에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늘 평안한 것입니다. ? 구원에 있을 때 하나님의 평안으로 지키기 때문입니다.

 

또 그의 마음은 당신에게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의 영혼일 수 있죠. 이런 것입니다. 왜 완전한 평안을 얻게 되느냐?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에게 머물러 있는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평안함이 어디서 왔느냐? 사실 이 평안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평안함은 예수님에게 있는 평안함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께 머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머물다는 것을 다른 말로 뭐라고 하느냐? 그다음 말씀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그가 당신을 의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의지라는 것은 단순하게 어려움을 당할 때 의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 안에 있으면서 내 마음이, 내 영혼이 예수님에게 머물러서 완전한 평안을 누리는 상태가 바로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시편에 내가 주를 의지하리니라고 많이 나오죠. 이것은 구원 안에 있을 때 일입니다. 그래서 trustbelieve의 상하관계입니다.

 

believe는 영적인 구원 안에서 쓰는 표현이라 한다면 trust는 안에 있는 실제적인, 구체적인 내용물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예수님에게 머무니까 거기서 평안함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를 의지하오니인데 일반적으로 나올 때 주는 내게 방패가 되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지하니까 그 평안함으로, 든든함으로 두려움이 없고 고통이 없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너희들은 여호와를 영원히 ‘trust’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in the LORD’입니다. 성경에서 여호와로 번역하죠. 그런데 영어는 ‘LORD’입니다. 무엇이 맞을까요? LORD는 원래 여호와가 아닙니다. ‘입니다. 그런데 전부 다 여호와로 번역했습니다. LORD는 아도나이입니다. 아도나이를 개역개정에서 여호와로 번역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중요합니다. 킹제임스의 오번역입니다. 이것은 사실 개역개정이 번역을 잘한 것입니다. 원어는 여호와입니다. 원어가 여호와인데 킹제임스가 ‘LORD’로 번역했습니다.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주 여호와는 오번역입니다. 주님 안에서 여호와가 영원한 힘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실제로 우리 안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임재입니다. 구원이 무엇이냐? 우리가 의지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머문다는데 없는데 머무는 게 아니라, 가상이 아니라 실제로 주님이 살아계셔서 우리 안에 계시고 내 영이, 내 마음이 예수님께 머무니까 완전한 평안함이 오는 것입니다.

 

난 평안해야 해. 평안해야 해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평안함이 노력으로 안 됩니다. ‘기뻐하십시오!’ 그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깊은 내면은 우울합니다. 내면은 엄청 안 좋습니다. 그런데 겉으로만 웃는 것입니다. 내면이 기쁨이 충만해지는데 왜 충만해지느냐? 실제 여호와가 ‘everlasting’ 항구적인, 지속적인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힘은 평안의 능력입니다. 사랑과 기쁨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오번역된 것입니다. ‘주 여호와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입니다. 여호와가 영원한 힘이 되신 것입니다.

 

5절입니다.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그분은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들을 ‘bringeth down’ 내리시는 것입니다. 높은 데에 있는 것은 교만한 자들이며 불신자들이며 안 좋은 자들입니다. 인간은 날 때부터 다 교만합니다. 왜 교만할까요? 다 원귀신이 있는데 원귀신은 다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다 교만한 것입니다. 못 느끼는 거죠. 그래서 내리시는 것입니다.

 

‘lofty city’ 우뚝 솟은 성, 그것을 그분이 헐고 또 헐고 결국은 땅에 내려앉혀서 ‘dust’ 진흙, 분토, 먼지, 흙으로 그것을 깔아뭉갠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불신자들을. 구원받은 자들은 성 안이니까 완전한 평안으로 지켜주시고 성 밖은, 구원을 안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계속 심판을 가하시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드디어 영적으로 밟히는 삶입니다. 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래서 어둠에 밟히는 것입니다. 밟혀서 내면세계가 참 불행합니다.

 

7절입니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오번역입니다. ‘the just’ 바른 자의 길은 ‘upright’ 똑바로 선 자, 똑바로 서 있는 것입니다. upright는 구원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가장 똑바르신 당신이 그 바른 자의 길을 ‘weigh’ 잰다는 것입니다. ‘과연 구원에 합당한가?’하고 재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바른가를 보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앞에 인정되어야 받는데 우리를 잽니다. 통변이 재어보는 것입니다. 어떤가 보는 것입니다. 과연 이게 제대로 가나 못 가나 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합격되면 그때 구원으로 오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그렇습니다. 오 여호와여! 당신의 심판의 길에서 우리가 기다렸습니다입니다. 사실 심판은 재림이나 그런 게 아니라 판단의 길입니다. 우리가 ‘judgement’를 이해할 때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judgement’라는 단어는 판결, 판단으로 번역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심판이라는 말은 아칫 엉뚱한 말인데 하나님께서 재어보신 다음에 합격하면 그래 들어와’, 안 하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 결정짓는 것을 말합니다. 드디어 내가 의롭게 살았는데 부합되면 나도 구원 속으로 들어오게 해달라고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갈망, 소원이 ‘to thy name’ 당신의 이름입니다. 이름은 존재입니다. 내가 합당해져서 예수님의 존재를 갈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악하면 우리 영이 예수님을 원치 않게 됩니다. 신기하게 마귀를 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룩해지면 우리 영이 자동적으로 예수님을 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진리의 은혜 가운데 쭉 살아서 합당하게 되니까 드디어 예수님의 존재를 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당신의 ‘remembrance’ 기억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 존재입니다. real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기억하시고 생각하십니다. 우리는 없는 걸 믿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나를 생각하시고 나를 기억하십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실제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드디어 내 안에 심판, 판결을 통해서 오신 것입니다.

 

9절입니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내 영혼으로 나는 밤에도 당신을 사모하며입니다. 이것이 사랑에 대한 표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근본적인 마음이, 내면세계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잘 안 보이죠. 그런데 내면으로 사랑하는데 우리가 내면으로 사랑하는 것을 밤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내면입니다. 내면으로 주님을 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 내 영으로 내가 일찍이 당신을 찾습니다입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됩니까? 인간은 내가 원하는 대상을 구합니다. 좋은 집을 원하는 사람은 좋은 집을 구합니다. 내가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데 드디어 예수님을 우리가 찾는 것입니다. ‘무엇을 원하느냐?’입니다. 직위? 행복? 축복? 아닙니다. 예수님을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해야 할 내용들은 축복이 아닙니다. 우리가 찾는 내용들은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 예수님 안에, 예수님 앞에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안 찾고 딴 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영이 곤고함을 느낍니다. 거꾸로 우리 영이 절망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소망이라고 부르는데 소망은 예수님을 볼 때 오는 현상이 소망입니다. 믿음 위가 소망입니다. 소망이 더 높은 것입니다. 소망은 우리가 항상 든든합니다. 소망이 있으면 든든합니다. 소망이 없으면 변화가 있습니다. ? 예수님은 우리가 항상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예수님을 소유할 수 있고 항상 우리가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는 것이 신앙에서 더 빠른 길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심판이 땅에 있을 때입니다. 드디어 나를 판단해서 나를 구원으로 넣으셨습니다. 그런데 구원에 이르지 않은 사람, 땅에 대해서입니다. 땅의 거민들은 의를 배울 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안에 안 있는 사람에게 계속 심판을 가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의를 아는 것입니다. ? 의인들은 심판받지 않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병들었습니다. 죽었습니다. 그것이 심판입니다. 병들었습니다.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징계입니다. 심판과 징계는 다른 것입니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기 위해서 벌의 대가로써 그냥 끝을 내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런데 징계는 그것이 아닙니다. 징계는 항상 회복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왜 때립니까? 미워서? 아닙니다. 고쳐서 달게 하기 위해서 때립니다. 이것이 징계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징계를 통해서 돌아와서 더 나은 데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그러나 악인에게 은혜가 보여지게 하라. 그러나 의를 배우지는 않을 것이다입니다. 은총은 구원입니다. 악인도 구원이 가능한가요? 저울질해서 넣는데 악인이 구원이 되느냐?’입니다. 여기서 악인은 구원이 될까 말까 한 의인을 말합니다. 진짜인가요? 진짜입니다. 우리가 구원으로 들어올 때 하나님께서 얘를 넣을까 말까하다가 은혜로 말미암아 일단 넣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반은 다 상실됩니다. 왜냐? 악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을 드렸죠. 요단강 좌편은 구원의 땅이고 오른편은 길르앗 땅인데 여기는 구원상실의 땅입니다. 이상하게 우리가 분명히 구원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물리치십니다. 왜 물리치시느냐? 악이 성화가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물리쳐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핵심은 구원이 핵심이 아닙니다. 성화가 핵심입니다. ? 구원받아도 바로 즉각 떠나갑니다. 바로 구원에서 이탈되어 버립니다. 실제로 이것이 반입니다. 이것은 이제까지 제가 경험한 것입니다. 악이 해결이 안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이 엄청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악인도 구원 안으로 넣을 수가 있습니다. 진짜인가요?

 

‘uprightness’의 땅입니다. 이것은 똑바로 세워진 자의 땅입니다. 구원의 땅입니다. 구원의 땅에 그가 ‘unjustly’ 바르지 않게 대한다는 것입니다. 악인인데 분명히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쁘게 대하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의 위엄을 그는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다시 또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사실은 성경에 이것만이 아니라 구원에서 이탈되는 이런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11절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오나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불이 주의 대적들을 사르리이다

 

여호와여 당신의 손이 올려질 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입니다. 그들은 보지 못할 거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일까요? 여기처럼 구원을 받자마자 또 나중에 이탈된 자들입니다. 그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못 보죠. 본다는 얘기는 눈을 보는 게 아닙니다. 감지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로 예수님이 우리 안에 머무시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못 보죠. 영이 보는 거니까 느낌이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냐? 백성에 대해서 그들의 ‘envy’ 부러워함, 질투가 그들에게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이 이탈된 자들은 당연히 부러워하죠. ‘자기들끼리 예배드리고 나는 쫓겨났고하면서 부러워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당신의 원수들에 대한 불이 그들을 사른다는 것입니다.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불은 심판입니다. 그래서 구원 밖에 있는 자들은 결국은 심판당하는데 일순간에 구원을 받았다 할지라도 결국은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12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의 모든 일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안함을 ‘ordain’입니다. ordain법적으로 정하다입니다. 쉽게 말하면 구원이 무엇이냐? 평안을 법으로 정했습니다. ‘너 구원 받으면 평안이 있어라는 것입니다. 법으로 정한 것입니다.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맘이 늘 평안해~’ 평안함이 정해진 것입니다.

 

당신은 또한 우리 안에서 우리의 모든 ‘works’ 행위들을 ‘wrought’ ‘초래하다’, ‘일으키다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일을 하느냐?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느냐? 이 모든 게 우리가 출발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모든 걸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을 도와주시고 헌신을 도와주시고 지혜를 도와주시는 것이지 우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에 들어올 때 그 안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는데 우리의 상급도 도와주시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사실 우리 것이 아닙니다. 선물입니다. 주신 은혜입니다.

 

13절입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는 주만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오 여호와여,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당신 외에 다른 주가 우리에 대해서 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는데 사실 나는 알고 보니까 과거에 당신 외에 다른 주, 이 다른 주가 무엇입니까? 방백들, 귀신들, 마귀들입니다. 마귀들이 과거에 우리 안에 주권을 가지고 우리를 지배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에 의해서만 우리는 당신의 이름을 언급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면 이런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기 전에는 다른 귀신들, 어둠에 의해서 지배당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약화되었고 당신만 내가 임재에 의해서 순종하겠다는 결단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우리 안에 어둠의 영이 있죠. 과거에는 우리가 어둠의 영을 따라 순종했죠. 이제는 다시 바꿔서 예수님께 그 순종으로 가겠다는 결단입니다.

 

14절입니다.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우리 안에 나를 주권을 잡았던 자들은, 그들은 하나님과 끊어진 자들입니다.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사망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일어나지 못할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벌을 주셔서 그들을 멸망시켰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권을 행사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멸망한 자들입니다. 마귀, 사탄, 귀신들이죠.

 

그래서 그들의 모든 기억들을 당신이 소멸했다는 것입니다. 기억들을 소멸시키다? 이것은 추방시킨 것입니다. 이제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안에 있는데 내가 과거에 다시 주님을 따라가는데 반대하는 어둠의 영들이 내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그들을 추방하는데 기억이라는 얘기는 머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존재적 기억입니다. 이것이 함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을, 어둠들을 쫓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의 온전한 구원 속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은 그들을 드디어 추방시켜서 다시는 나와 상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

 

당신이 나라를 크게 하셨습니다입니다. 이것은 내가 얻은 구원이 확고부동해진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 어둠이 나가서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복음이 전 세계로 퍼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이냐? 복음은 어둠이 추방된 사람을 통해서 어둠이 나가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딴 게 아닙니다. 내가 빛으로 박멸했습니다. 드디어 남들도 이리로 오면서 어둠이 나가서 점점 복음이 막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교리의 동화가 아닙니다. 빛의 확산입니다. 드디어 저 사람도 같이 평안함을 누리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입니다. 당신은 땅의 모든 끝에까지 ‘removed it far’ 그것을 멀리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땅의 모든 끝에까지이것은 복음이 전 세계로 퍼지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퍼져서 드디어 땅의 모든 끝에까지 복음이 다 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퍼져서 한계가 없는 것입니다. 경계가 없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여호와여 그들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고통 가운데 그들이 당신을 찾아오며 당신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했을 때입니다. 이제 문제가 생겼습니다. 내가 구원 안에 있고 복음이 전 세계에 퍼졌는데 드디어 ‘trouble’ 고통이 왔습니다. 환란이 왔습니다. 어떤 환란일까요? 환란이 무엇일까요? 드디어 하나님께서 징계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징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합니까? ‘poured out’ 눈물을, 기도를 퍼붓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산고를 겪으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 앞에서 그와 같으니이다

 

출산의 때에 가까워진 아이를 가진 여자처럼 ‘pangs’ 출산의 고통 가운데 부르짖었습니다. 당신 앞에 우리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믿음 안에 있는데 내가 복음을 증거하는데 이것이 막힌 것입니다. 그래서 막히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고통을, 징벌을 주신 것입니다. 주시니까 나는 여전히 아기를 낳기 위해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 몸부림쳐서 막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말씀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패하는 것입니다. 전파의 실패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환란입니다. 대환란 때는 기를 써도 안 됩니다. 분명히 그전에는 됐습니다. 전 세계에 복음이 증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안 됩니다. 분명히 하나님 앞에 징계받아서 막 기도하고 애써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진짜일까요?

 

18절입니다.

우리가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하였나이다

 

우리가 아이와 함께 있었으며 고통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람을 낳는 것처럼 있었다는 것입니다. 낳긴 낳는데 아기를 못 낳고 바람을 낳은 것입니다. 구원이 안 일어납니다. 헛수고하는 것입니다. 바람은 항상 허무, 헛수고를 말합니다. 헛수고한 것입니다. 그렇게 영혼을 위해서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고 애쓰고 했는데 결국은 구원이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가 땅에서 ‘deliverance’ 어떤 건짐도 ‘wrought’ 일으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구원 실패입니다. 과거에는 땅끝까지 구원이 이루어졌죠. 그런데 이제는 안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온통 기도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의 거민들이 ‘fallen’입니다. ‘추락하다’, ‘멸망하다’, ‘넘어지다’, ‘자빠지다입니다. 거민들이 추락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원래 땅의 거민은 추락해야 합니다. 상대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올라가면 그들은 추락되고 우리가 내려가면 그들은 올라가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이 안 일어나니까 땅의 거민들이 붕괴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이 붕괴가 안 되는 것입니다. ? 나를 통해서 구원이 일어나야만 어둠이 무너지는데 내가 구원을 못 일으키니까 땅의 거민이 붕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19절입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당신의 죽은 자들이 살아날 것이고입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어떻게 하나님께 죽은 자가 있나요?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입니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당신의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납니까? 그러면 구원을 잃었던 자가 살아나는 걸까요? 그쪽이 아닙니다.

 

모든 자가 볼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죽은 자입니다. 그 죽은 자들이 활동성을 갖고 휩쓰는 것입니다. 대환란이 무엇이냐? 대환란은 지옥 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처럼 행세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못 살아나죠.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런데 당신의 죽은 자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죽은 몸과 함께 그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짜 크리스천들입니다. 가짜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진짜는, 구원은 안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막 일어납니다. 분명히 지금 구원이 안 일어나고 실패하는데 막 일어나는 것입니다. 당신의 죽은 자들이 일어나는 것은 가짜 크리스천들이 신령하게 보여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내 죽은 몸과 함께 그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드디어 진짜로 활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라, 노래하라입니다. 완전 진짜로 보이는 것입니다.

 

‘dust’ ‘진흙에, 먼지에, 흙에 거주하는 너희들아입니다. 아까 나왔죠. ‘흙에 거주하는 너희들아는 다 지옥 갈 사람들입니다. 대환란 때 지옥 갈 사람들이 마치 산 자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대환란 때는 구원이 일어나지 않고 지옥 갈 자들이 활동해서 자기들이 깨어서 노래하는 것입니다. ‘노래하라입니다. 그래서 ccm 부르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막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대환란 때는 가짜가 진짜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이슬이 ‘herbs’ 채소, 약초의 이슬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슬은 성령님입니다. 은혜입니다. 가짜입니다. 가짜 은혜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정말일까요? 땅은 죽은 자를 ‘cast out’ 내보내는 것입니다. 대환란 때 이 땅에서 죽은 자를 내보내서 산 자처럼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슬픈 일입니다. 진짜들은 영적으로 다 죽습니다. 출산이 안 됩니다. 가짜가 진짜처럼 행동해서 잡는 것입니다.

 

20절입니다.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와라 내 백성아, 너는 방으로, 밀실로 들어가라입니다. 그리고 네 옆에 있는 문을 닫아라입니다. 그리고 ‘for a little moment’ 잠시 동안 몸을 숨기라는 것입니다. 대환란기간 동안 몸을 숨기라는 것입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갈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가 대환란 때의 모형입니다. 더 이상 구원자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혼자 예배드리는 아주 최악의 경우를 나중에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없으니까 다니엘이 2층에서 혼자 예배드립니다. 그래서 너 이제 골방에 들어가, 잠깐 동안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물론 대환란 기간 동안입니다.

 

언제까지입니까? ‘indignation’ ‘분기함입니다.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분기함이 지나갈 때까지입니다. 대환란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분노가 나타난 것입니다. 더 이상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환란입니다. 마귀에게 내어준 것입니다. ‘인간들아하고 내어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셨죠. 언제 동안? 초림부터 2000년까지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파시켰습니다. 끌어안고 조인되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버린 것입니다. ?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다 악해지니까 마귀에게 버려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역사하도록 허용한 것입니다. ‘네가 내 노릇 해봐하고 마귀를 내세운 것입니다.

 

이제 인간들은 마귀를 숭배합니다. 섬깁니다.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찾는 너희들아, 너희는 밀실에 들어가. 내 분기함, 분노가 지나갈 때까지 들어가 있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소수인데 마치 엘리야 시대 때 아합의 앞에서, 선지자 앞에서 7000명이 숨었다고 되어있죠. 드디어 소수의 사람들이 은밀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1절입니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덮지 아니하리라

 

보라 여호와께서 자기 처소에서 나와 땅의 거민들을 벌할 것이다입니다. 드디어 재림이 있는 것입니다. 재림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있는 자들의 그 죄악에 대해서 벌하려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재림은 심판입니다. 이것이 계속 더블링됩니다. 땅은 점점 살기 어렵게 됩니다. 심판이 가속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영혼들을 마귀에게 던져버리고 땅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땅은 또한 자기의 피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죄는 심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 때문에 땅이 심판받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땅이 심판당하는 것입니다. 땅이 사막화되는 것은 다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땅이,무생물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죄 없습니다. 인간의 죄가 많아져서 땅이 다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어제인가 아이티에 강진 때문에 200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계속 이런 것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도처가, 전 세계가 이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서막에 불과합니다. 성경에는 대환란이 참 많이 나옵니다. 사복음서에 대환란이 3군데 나오죠. 그리고 이 장면이 되게 많이 나옵니다. ? 하나님의 포인트가 어디입니까? 성경에서 복음전파 기간, 초림부터 재림까지가 포인트인데 이 포인트 가운데 대환란이 뒤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많이 묘사된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들의 살해당한 자, 죽임당한 자를 ‘cover’ 막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 죽임당하는 것입니다. 다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드디어 못 막습니다. 다 죽어서 남자가 없습니다. 전부 다 영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다 죽고 재림할 때 구원받은 자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마음의 악을 제거하지 않으면 마귀를 못 이깁니다. 결국은 죄와의 싸움입니다. 마음의 악들을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 안에는 악이 있습니다. 음란, 교만, 그런 것을 다 제거해야지 우리는 천국 못 갑니다. ? 마귀를 못 이깁니다. 대환란 때는 죄가 가득하게 되어있습니다. 노아 때처럼 죄가 꽉 찹니다. 다 음란해집니다. 지금은 누구든지 다 음란하고 누구든지 다 교만합니다. 이것을 이겨야 하는데 지면 구원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엄청 많이 애써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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